식물은 고통을 느끼는가?

모기불님이 드디어 위키피디아에 가셔서 Pain으로 검색해 보셨나 보다.

'식물은 고통을 느끼는가?(http://mogibul.egloos.com/3893529)'라는 포스트를 올리셨다.

그런데, 과학이 말하는 고통에 대해 딱 일반인 수준의 인식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해 버리셨다. 이거 어쩌나. 뭐 다른 사람들이 이런 견해를 밝혔다면 문제 될게 없겠지. 하지만 이 지식 가지고 그런 막말을, 그것도 엄격한 실증주의 과학자이신 기불님이... 실망이 크다.

과학에서 고통에 대해 뭐라 말하는지 궁금하신 분들은 일단 모기불님의 글을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나서 그 글에 제가 달아 놓은 덧글(아래에 옮겨 왔습니다)을 읽어주십시오. 모기불님의 자뻑성 마지막 반응도 놓지지 마시길. 일을 이렇게 키우시면 어떻게 합니까. 기회가 있을 때 잘 하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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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ed by jeajvyfa at 2008/09/06 13:40 

관심 없다고 하셨었는데. 생각이 바뀌셨나 보군요. 이왕이면 위키말고 다른 자료들도 찾아보셨으면 좋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드는데.

"물론 우리가 생각하는 고통은 못느낄 지 모르지만 개미에게도 죽는 게 별로 유쾌할 것 같지는 않다는 것쯤은 생각해볼 수 있다."

->오류가 있군요. 고통을 못 느끼는데 유쾌한지 아닌지 느끼고 자시고 할 게 없겠죠.

"식물이 갖는 "먹히고 싶지 않다" 라는 기분이나 "나를 먹는 넘은 대를 끊어놓겠다." 라는 강력한 결의는 무어라고 정의를 해야 할 것인가?"

->그런 걸 생존 '본능'이라고 하죠. 잘 잡아 먹히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갖고 있어야 종을 보존하는게 가능하겠죠. 정확히는 그것을 가지고 있었기에 종을 보존해온 것이라고 봐야겠지만요. 고통도 못 느끼는 개체가 이런 본능조차도 없으면 지금까지 살아 남았겠습니까. 그 작은 크기에 복잡한 신경구조를 갖추기 보다는 간단하게 생존 본능만을 가지고 있는게 훨씬 효율적이겠죠. 진화의 과정에서 그런 종들이 살아 남았을 테고요.


"개미나 벌은 성대가 없으니까 말은 못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갸들이 서로 의사소통을 못하는 것은 아니란 말이야. 갸들은 화학물질로 의사소통을 하죠. 식물은 성대는 고사하고 입도 없지만 갸들도 화학물질을 통해 서로 의사소통을 합니다."

->척추동물과 다른 의사소통 방법을 가지고 있는 다른 동물들이 고통을 느낄지 판단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과학자들이 생각을 안해 봤을 까요. 이 쟁점과 관련해서 처음 쓴 덧글에 소개해드린 글이 있는데 아직도 안읽어 보셨나 봅니다.

일단, 전문을 읽으시길 바랍니다만, 제기하신 쟁점에 대한 내용들만 옮겨오겠습니다.
http://www.parl.gc.ca/37/2/parlbus/commbus/senate/Com-e/lega-e/witn-e/shelly-e.htm

Scientists have used three lines of reasoning to assess the likelihood that invertebrates are capable of feeling pain5.

 

The evolutionary function of pain
The neural capacity of invertebrates
The behaviour of invertebrates


1. The evolutionary function of pain.

In vertebrates pain is thought to be an important educational tool6. Vertebrates are relatively long-lived creatures and learning shapes much of their behaviour. Learning from pain (and pleasure) plays a vital role in the development of their behaviour6.

Almost all invertebrates are short-lived and their behaviour is thought to be largely genetically determined7. Therefore, there is less evolutionary pressure selecting for the evolution of pain in this group of animals6.

 

2. The neural capacity of invertebrates.

Except for the cephalopods, invertebrates have small nervous systems, consisting of many small brains (ganglia). Because of the small number of neurons and the distributed organization of their nervous systems, invertebrates are thought to have limited cognitive capacity6. High cognitive capacity is thought to be a prerequisite for the development of an emotional response6.


3. The behaviour of invertebrates

Invertebrates show few, if any, of the behaviours that we would recognize as evidence of emotion6. Many invertebrates are cannibalistic, and many eat their young when given the chance. Most have no social behaviour. Although they can respond vigorously to noxious stimuli, even this response is inconsistent. Insects, for example, will continue with normal activity even after severe injury. An insect walking with a crushed tarsus (lower leg) will continue applying it to the ground with undiminished force. Locusts will writhe when sprayed with DDT. However, they will also continue feeding while being eaten by a praying mantid6.


다른 과학자들을 너무 우습게 보신 것 같습니다. 인간이 아닌 종들이 고통을 느끼는 능력을 연구할 때 그들이 인간과 다르다는 점을 기불님이 아닌 다른 과학자들은 미쳐 고려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다뇨.

 

"그런 날이 오기 전까지는 만일 식물은 고통종류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완벽하게 입증된다고 해도 이것이 동물은 고통을 느끼니까 먹으면 안되고 식물은 못느끼니까 먹어도 된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지진 않는다는 것을 잊으면 곤란하다."

->위에서 제가 설명드린 것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식물이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게 일반적인 견해인 만큼, 내가 살기 위해 어쩔수 없이 다른 생명을 취하지만 고통을 최소화 한다는 윤리적 기준을 받아들인다면 확률이 높은 선택을 하는게 타당하겠죠. 대부분의 사람들도 일부 과학자들이 1, 20년 후 인간광우병의 두번째 창궐 가능성을 제시했음에도 확율이 높지 않을 것 같다는 견해를 받아들여서 패닉에 안빠지고 검역시스템 믿으며 쇠고가 잘 먹고 있지 않습니까. 100%가 아니더라도 높은 확률의 선택을 하는게 비합리적이진 않을텐데요.
(광우병 예시에 대해 오해가 있을까봐 덧붙이자면, 개인의 선택과 국가의 정책은 달라야 한다는 것)


 Commented by 기불이 at 2008/09/06 13:45
이비인후과를 가보라니까.... 아직도 "고통을 최소화 한다는 윤리적 기준을 받아들인다면" 이런 소리를 하고 있어. 식물이 고통을 느끼든 말든 건전한 식생활을 영위하는 상식인에게는 그딴 윤리적 기준따위 적용이 안되니까 아무 상관이 없다는 이야긴데 그게 그렇게 이해가 안되나?

"고통을 최소화 한다는 윤리적 기준을 받아들인다면" 이딴 엉터리 전제를 깔아놓으니까 그딴 이상한 결론이 나오는 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병원에 가봐요.


 Commented by jeajvyfa at 2008/09/06 14:37
하하, 알았어요, 알았어. 끝까지 막말 밖에 안하시네. 과학 얘기 좀 하시길래 좀 제대로 상대해 드릴까 했더니 이건 뭐... 기껏 일반인 수준의 지식 가지고 이렇게 뻐팅기셨다니. 제가 소개해드린 자료는 아예 읽지 마세요. 읽고 나면 쪽팔릴테니까.

그리고, 미국에서 동물 실험에서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 하기 위한 3R 원칙을 법제화 했다던데(http://www.aphis.usda.gov/animal_welfare/downloads/policy/policy12.pdf) 기불님 혹시 의학이나 생물학 계통에 계시다면 신경 좀 쓰셔야 겠어요.(이 계통에 계신게 아니라는게 확실하지만) 건전한 상식인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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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인이 "고통을 최소화 한다는 윤리적 기준을 받아들인다면"?(http://mogibul.egloos.com/3893808)


 Commented by 적안 at 2008/09/06 14:57
이제 조금 이해하셨는데요, 한가지가 빠졌네요. '고통을 최소화'라는 말에는 '한 개체가 겪는 고통을 최소화'라는 뜻과 함께 '고통을 겪는 동물의 숫자를 최소화'라는 두가지 의미가 다 포함됩니다.

그나저나, 제가 저 2번의 과학적 근거를 논했지만 저도 저 윤리적 기준 제대로 안 받아들이고 있으니 본인이 비윤리적이라고 너무 괴로워 하실 필요는 없어요. 사람이 이미 익숙해진 것을 포기한다는것도 어렵고 그게 자신에게 식도락의 큰 즐거움을 주던 것이라면 더 어렵다는 것 알거든요. 뭐 브리짓 바르도 같은 인종차별주의자야 인정 안할테지만.

 Commented by 기불이 at 2008/09/06 15:20
너 아직도 이비인후과 안갔냐. "이미 익숙해진 것을 포기한다" 는 것은 채식교로 전향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건전한 상식인에게는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란다. 언제까지 그렇게 찌들어 살텐가. 자랑스러운 잡식주의자로서 당당하게 살아보지 않으련?

 Commented by 엄머나 at 2008/09/06 16:35
또 나타나셨군요, 적안님. 책은 좀 보고 오셨어요?

 

공리주의에서 말하는 쾌락의 최대화 공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 쾌락의 총량 - 고통의 총량 = 총 쾌락량 >

이 공식을 통해 나온 총 쾌락량이 (+)인 방향으로 가는 것이 좀 더 사회적으로 올바른 결정이라고 주장했지요.

적안님이 말씀하시는 바가, 이 초기단계의 공리주의와 뭐가 다르지 잘 모르겠네요. 공리주의가 받은 비판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1. 고통과 쾌락에 대한 정의.
2. 고통량과 쾌락량의 계량에 대한 문제.
3. '올바름'에 대한 문제 등등

이런 비판과 이에 관련한 피터지는 논의가 200년 동안 지속되었지만, 아무도 이를 사회, 즉 인간의 사회 바깥으로 확장하려는 무모한 시도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되면 학문으로서의 존재 의의를 상실하게 되거든요. 헛소리가 되니까요. 만일 공리주의를 인간 사회 바깥으로 확장하게 되면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1. 인간이 만든 올바름에 대한 공식이 과연 인간 외의 존재에게 적용 가능한가?
2. 적용 가능하다면, 그들이 그 사실을 인정할 것인가?
3. 위의 1과 2를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등등

심지어는 공리주의를 그 근간으로 삼는 경제학에서도, 이를 엄격하게 통제하기 위해 다양한 제약조건들을 걸어놓고 있습니다. 경제학 개론이라도 졸지않고 착실히 들으셨다면, '인간은 자신의 즐거움을 최우선으로 판단한다, 인간은 모두 합리적인 존재이다, 정보의 비대칭성은 무시한다' 등의 경제학 개론 수준의 제약조건들을 들어보셨을겁니다. 이렇게 가정하지 않으면 논의 자체가 불가능해지니까요. 좀 더 현실에 가까운 고급 경제학에서는 이런 가정들을 조금씩 완화하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하고요. 적안님의 수준에 맞추기 위해 제 전공인 철학 쪽으로는 언급을 줄이지요.

제가 든 저런 문제점들을 모기불님께서도 꾸준히 지적하셨지만, 보이지 않으신다면 그 지점에서 의사 소통은 이미 끝난겁니다. 적안님, 그냥 혼자 주장하셔서 쾌락을 증가시키시고, 여기서는 그만 입 다무셔서 여러 사람의 도통을 줄이시는게 적안님의 철학적 입장에 합치하는 길이에요. 지금이라도 줏대를 가진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Commented by 적안 at 2008/09/06 16:47
엄머나님,

"아무도 이를 사회, 즉 인간의 사회 바깥으로 확장하려는 무모한 시도는 하지 않았습니다. "

->여기에 대해서는 모기불님께 드린 덧글 중 일부를 복사해 오는 것으로 대체하겠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동물 실험에서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 하기 위한 3R 원칙을 법제화 했다던데(http://www.aphis.usda.gov/animal_welfare/downloads/policy/policy12.pdf) 기불님 혹시 의학이나 생물학 계통에 계시다면 신경 좀 쓰셔야 겠어요.(이 계통에 계신게 아니라는게 확실하지만) 건전한 상식인님. ^^


"'인간은 자신의 즐거움을 최우선으로 판단한다"

->네, 맞습니다. 물론 여기서의 '즐거움'의 정의가 그리 협소하지 않죠. 동물의 고통을 직시하는게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그 고통을 느끼지 않으려 하는 것은 '즐거움'의 범주에 속하지 않나보죠?


그리고요, 모기불님은 여기에 대해 진지하게 과학적 토론 할 생각이 없으신 듯 하니 관심 있으시면 제 블로그로 와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쥔장님이 자기 집에서 계속 나가라고 하니 저는 여기에 오래 있을 수가 없는데, 님 같은 분들이 쥔장집에서 제게 반론 하고 계시면 토론을 하자는 건지 상대방이 듣건 말건 내 할말 하겠다는 배설의 의지인 건지 알 수 가 없어서요.

 Commented by Cuchulainn at 2008/09/06 16:22 
에... 동물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채식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말하자면 골자인 듯 싶은데:

그렇다면 채식을 하려면 직접 밭갈고 추수해서 다른 동물들이 어처구니 없이 죽는 경우를 배제해야 가능한 논리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쉽 게 말하자면, 매일 먹는 밥, 빵같은 물건만 보더라도, 밀밭에 동물이 전혀 살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계신건 아닌가 하는데요. 아시나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밭류의 환경은 토끼나 새같은 주로 먹히는 입장에 놓이는 동물들에게 매우 좋은 피난처 역할을 하곤 하는데, 문제는 추수기가 되겠죠. 이앙기의 칼날은 동물은 살려두고 밀은 베어내고 할 줄 모르거든요. *논에도 미꾸라지등 물고기 많이 살고 있습니다. 역시나 같은 논리가 적용되지요.* 차라리 저렇게 자기도 모르는 상황에 비명에 칼날을 맞고 죽어가는 경우라면 그래도 창졸간에 죽으니 고통이 나름대로 적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만, 브라질이나 기타 3세계 국가에서 자주 써먹는 농작기법중 하나가 화전인건 잘 아실테죠? 무수히 많은 동물들이 보금자릴 잃고 운이 좋으면 다른 곳에 보금자릴 틀던가, 그렇지 못하면 심심하면 죽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데, 저런 고통은 그래도 도살장에 끌려가서 겪는 고통은 아니니 괜찮은 고통이라고 보시는건 아닐테고...

따라서, 동물의 고통이나 생명이 문제가 된다면 1)자동화된 추수기계의 사용은 철저히 배제시키는 상황을 연출해야 할테고... 2) 야채의 출신지역을 트랙 걸어서 동물들의 생명이 희생되지 않았음을 보증할 수 있어야 할텐데... 그렇지 않을 양이면 가게에서 파는 쌀이나, 빵집에서 파는 빵, 샐러드 가게에서 파는 양상추 이런거도 드시지 마셔야 올바른 논리의 적용이 되지 않나요? 쌀에도, 밀에도, 기타 온갖 야채에도 비슷한 논리가 적용이 되는 상황이거든요. 그렇다면 결론은 스스로 김매고 밭갈고 모 심어서 먹을걸 마련해야 하지 않느냐는 결론이 나오지요.

(괜히 입맛에 맞는 쪽으로만 동물의 고통 운운하고 끼워넣으면 곤란하죠. 동물의 고통을 적용할거면 모든 동물에게 다 적용하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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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지도 않은 윤리적 기준같은 소린 집어치우세요. 채식이 최소화하는 숫자는 고통을 겪는 [가축]의 숫자이지 [동물]의 숫자는 아니랍니다.

 Commented by 적안 at 2008/09/06 16:42
아뇨, 골자를 잘못 파악하셨습니다. 지금 논점은 동물 중 척추 동물과 일부 무척추 동물이 고통을 느끼고 그외의 동물 및 식물을 고통을 느끼지 않으니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 하는 식습관을 고안하여 지향하는 채식주의에 대한 얘기 입니다. 고통을 완전히 없애자는게 아니죠. 그건 불가능합니다. 이 그룹은 그걸 알고 있는 집단입니다. 그러기에 제시하신 1), 2)는 고통을 '최소화'한다고 주장하는 집단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논리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적극적인 실천적 채식주의자들 중에는 제시하신 것들과 같은 것들을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경우도 있고요. 실제로 2)의 예는 일부 현실화 된 것들이 있기도 합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유기농 상점인 whole food 같은 곳에는 가끔 친환경적인(구체적으로는 경작지 주변 생태계 파괴를 최소화 하는 경작 방법을 적용한) 농산물이 나오기도 하죠. 한국에서는 오리를 이용한 무농약 농법이 여전히 오리의 희생(나중에 잡아서 오리고기로 출하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죠)을 담보로 하기에 친환경적이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된 적이 있었고요.

"채식이 최소화하는 숫자는 고통을 겪는 [가축]의 숫자이지 [동물]의 숫자는 아니랍니다." 가축은 동물이 아니었던가요?


그리고요, 모기불님은 여기에 대해 진지하게 과학적 토론 할 생각이 없으신 듯 하니 관심 있으시면 제 블로그로 와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쥔장님이 자기 집에서 계속 나가라고 하니 저는 여기에 오래 있을 수가 없는데, 님 같은 분들이 쥔장집에서 제게 반론 하고 계시면 토론을 하자는 건지 상대방이 듣건 말건 내 할말 하겠다는 배설의 의지인 건지 알 수 가 없어서요.

 Commented by 기불이 at 2008/09/06 23:26
적안// 야 너는 지금 니가 싼 똥을 넘들이 치우는 것을 '토론' 이라고 부르냐?

 Commented by 남쪽계단 at 2008/09/06 19:09
[The Omnivore's Dilemma]에서 대략 다 나온 이야기들로 기억합니다만... 같은 과학적 사실에서도 얼마든지 다른 윤리적 판단이 가능하지요. 공리주의가 윤리적 판단의 근거라면 동물을 잘 보살피고 인도적으로 도살하는 식으로 동물의 '쾌락'의 양을 늘이고 '고통'을 줄이는 방법도 있거든요. 저자의 결론도 대략 그런 식이었고. 책은 바로 보실 수 없지만, 저 책의 근간이된 뉴욕타임즈 글은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An Animal's Place http://query.nytimes.com/gst/fullpage.html?res=9500EFD7153EF933A25752C1A9649C8B63&scp=1&sq=An%20Animal%27s%20Place&st=cse

 Commented by jeajvyfa at 2008/09/07 06:41
네, 당연히 윤리적 판단은 다를 수 있습니다. 님이 제시하신 예는 animal welfare에 해당합니다. 반면 지금 논하고 있는 채식주의자들은 animal right을 주장하는 것이고요. 그리고 현재 동물의 well-being에 대해 많이 주목하고 있는 서구국가에서조차도 animal right보다는 animal welfare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겠죠(저 역시 머리로는 animal right이지만 animal welfare를 현실적 선택으로 삼고 있습니다).

물론 생명의 고통을 최소화 하자고 주장하는 채식주의자들 중에서도 animal welfare까지만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현재 과학적으로 보기에 고통을 느끼긴 하지만 고통의 지속시간이 가장 짧다고 여겨지는 어류까지는 먹는 채식주의자들이 있죠. 물론 채식주의자들 내에서도 이들이 채식주의자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별로 격렬하지 않은)논쟁이 있는 것 같고요. 포유동물의 고기인 red-meat만을 먹지 않는 사람들도 넓은 범위의 채식주의에 포함되곤 하는데 이들은 '인간이 느끼는 고통과 가장 유사한 수준의 고통을 느낀다고 여겨지는 포유동물'을 섭취하지 않는 것을 선택한 사람들이죠. 가장 낮은 수준의 채식주의로 평가 받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미드 Grey's anatomy에 등장하는 남자 의사가 아마 이런 사람이었죠. 꼭 드라마 속에서만 등장하는 정도는 아니고, 미국 사람들 중에 이런 친구들이 꽤 있더군요. 제가 속한 연구실의 한 미국인 한테서 미국에서 광우병 터진 이후에 겸사겸사해서 이쪽으로 돌아섰다고는 이야기도 들어봤거든요.

과학계도 마찬가집니다. animal right까지는 동의하지 않지만 animal welfare에 동의하기에 실험동물의 고통을 줄여주는 3R 원칙을 채택하였고 몇몇 서구 국가에서는 법제화가 이루어 지기도 했습니다. 생명의 고통을 최소화 한다는 대전제에는 동의하고 있다는 뜻이죠. 또한
"Humane science is ethically appropriate and has the added advantage that it can result in the generation of more robust and reliable scientific information."(http://caat.jhsph.edu/publications/articles/To_3R_Is_Human_J-A_20041.pdf)
라며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 하려는 노력이 '인간의 이익과 행복을 늘리는 데 기여한다' 라는 유용성(공리성)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해당 과학계의 연구원들에게 설문조사를 하면 이 원칙의 도입에 대해 80~90% 정도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이런 사실들이 기불님이 막말을 동원해서 계속 주장하고 있는 '(모든 채식은 종교니까)이 채식주의도 종교다', '종교의 근거로 과학을 끌어들이면 과학을 강간하는 것이다', '식물이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 주장은 비과학적이다', '기껏해야 모른다고 말하는게 가장 과학적으로 타당하다', '상식인에게는 그딴 윤리적 기준따위 적용이 안된다', '이를 계속 주장하는 찌질이 jeajvyfa은 병원에나 가봐라'따위의 명제를 강화해주지는 않습니다. 대학 1학년 생물학 강의만 들어도 고통이 진화의 산물이며 왜 척추동물들이 고통을 느끼는 능력을 갖는 방향으로 진화했는가, 왜 그것이 종의 생명을 연장하는데에 유리했는가 정도의 지식을 갖출 수 있고, 이 분야에 대한 과학계의 동향을 모르더라도 이 프레임을 다른 종에 대해 적용했을 때 기불님의 주장이 얼마나 비과학적인지 알 수 있거든요.

 Commented by nox at 2008/09/07 09:51 
뇌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 괜히 지나가다가 낚였는데, pain 주제만큼 아직 알려진게 없는 분야를 저렇게 어떠한 행동을 할만큼 확실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게 놀랍네요.

척추동물의 Pain pathway 야 대강 알려진게 맞지만 그 너머의 생물체에게서는 아직 알려진게 거의 없다는게 올바른 표현입니다. (참고로 적안님이 언급하신 "Do Invertebrates Feel Pain?" 아티클은 그냥 "이렇지 않을까?" 수준의 아티클입니다.)

그리고 Pain 의 가장 큰 특징중의 하나는 주관적이라는 것입니다. 밖에서 보면 그저 pain sensory 에서 발생한 신호가 nociceptor 들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신호에 그렇게 강렬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가 경험해 봤기 때문이지요.

거기에다가 뭔가 굉장히 pain 에 가치부여를 하시는데 pain system 은 사실 걍 진화를 통해 얻어진 생존 도구입니다. 자신에게 위해가 될만한 것을 미리 피하거나 닥쳤을 때 피하기 위한 도구 인 것이지요. 이 시스템이 쓸만해서 계속 물려받고 있는 것이고요. (선천적 혹은 후천적으로 pain 을 못느끼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을 마감하는지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동물에 한정지어서 우리끼리는 고통을 느끼니까 어쩌고 저꺼고는.
지나치게 인간 중심적, 동물 중심적인 카르텔 같이 보이네요.

 Commented by jeajvyfa at 2008/09/07 12:25
님, 지금은 이야기가 채식주의가 말하는 윤리적 기준에 중심이 맞춰져 있다 보니 제가 강하게 단언을 하는 듯이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혹시나 싶어서 다시 살펴봤는데 정확히 과학적 판단만을 필요로 하는 논점들에 대해 기불님 막말에 기분이 상해서 다소 감정적으로 덧글을 달았을 때 빼고는 그렇게 단언했다고 보이질 않는군요.

모기불님 글 중에 제가 이와 관련하여 제일 처음 의견을 달은 게 있습니다. http://mogibul.egloos.com/3884108 일단 여기 가셔셔 제 첫 덧글부터 다시 한번 읽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가 제기 하지 않았던 쟁점들을 가지고 막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nox님은 보여주신 태도로 보아 불합리한 비난을 하지 않기 위해 그 정도 수고는 해주실 분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찾아다니기 귀찮으시면 그냥 제가 정리해 놓은 걸 보셔도 됩니다.(http://jeajvyfa.egloos.com/2002160)

솔직히 뇌과학과는 거리가 멀다보니 자신은 없습니다만, 뇌과학은 기작에 집중하는 분야다 보니 확실하다고 말하기 어렵다라는 것을 일반적인 견해라고 보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진화생물학을 대입해보면 얘기가 많이 다릅니다. 사실 이에 대해서는 모기불님이 그럭저럭 제대로 설명하셨죠.(고통을 느끼는 능력과 생존본능을 혼동하셨지만)

"식물이 동물, 특히 포유동물만큼 민감하게 고통을 느낀다면 아마 살아가기가 무척 어려울 것이다. 식물은 발이 없어서 지면에 고착해서 살아가기 때문에 온갖 잡넘들이 다 찾아와서 귀찮게 하는데 고통에 민감하고 게다가 감정까지 있다면 그 생이 얼마나 고통스럽겠냔 말이지. 지나가는 넘들은 아무 생각없이 마구 밟고 다니지, 게다가 온갖 벌레들이 다 와서 기어댕기고 뜯어먹는데 얼마나 간지럽고 아프고 그러겠습니까.(http://mogibul.egloos.com/3893529)"

식물로 진화된 생명이 중추(혹은 그와 유사한 무엇)가 끝없이 고통이 발생한다는 신호를 보내며 회피행위를 명령하는 시스템을 갖춰야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런 시스템이 필요한 것은 식물보다 더 오랜 생을 살면서도 기껏해야 평생 수십의 후손을 남길 뿐이어서 위험을 높은 확률로 피하는 능력이 필요한 척추 동물(+무척추동물 일부) 정도에서나 필요하겠죠. 또한 그런 시스템을 갖출 수 있을 정도의 용기와 그 시스템을 안전히 내부에 갖추고 있을 수 있을 정도의 강도를 갖는 조직이 필요할 것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하고요.(이를 간접적으로 뒷받침하는 과학적 근거들은 님도 언급하신 그 아티클에서 소개하고 있고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단언할 수 없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어떤 과학자도 여기에 대해 strong statement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겠죠. 무척추 동물에 대해서도 이에 관한 논문(예를 들어 http://www.springerlink.com/content/k424313511661146/)이 적을 수 밖에 없는 것도 당연한 것이고요. 대신 http://www.newscientist.com/article/mg13418184.800 -> 이정도로 정리하는 것은 가능한 정도겠죠. 그래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견해'라고 말해왔습니다.

그렇다면 아무리 그래도 확언하기 어려운 것을 가지고 어떤 행위, 윤리적 기준을 만들 필요까지야 없겠냐는 질문이 당연히 따라올 수 밖에 없겠죠. 고통을 완전히 배제한다는 기준이라면 이 질문에 답하는게 어렵겠지만 '고통을 최소화'한다는 기준이라면 가장 높은 확률의 것을 선택하는 것이 비합리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고통을 느낄 확률이 높아보이는 것을 먹자는 주장이라면 쓸데없는 모험이겠죠. 하지만, 일단 생명을 먹을 수 밖에 없다는 전제하에, 이왕 먹을거면 고통을 느낄 확률이 낮아보이는 것을 먹자는게 부도수표라고 생각하시나요? 모기불님이 이에 대해 비슷한 반론을 하셨고 제가 답한 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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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이 오기 전까지는 만일 식물은 고통종류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완벽하게 입증된다고 해도 이것이 동물은 고통을 느끼니까 먹으면 안되고 식물은 못느끼니까 먹어도 된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지진 않는다는 것을 잊으면 곤란하다.(http://mogibul.egloos.com/3893529)"

->위에서 제가 설명드린 것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식물이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게 일반적인 견해인 만큼, 내가 살기 위해 어쩔수 없이 다른 생명을 취하지만 고통을 최소화 한다는 윤리적 기준을 받아들인다면 확률이 높은 선택을 하는게 타당하겠죠. 대부분의 사람들도 일부 과학자들이 1, 20년 후 인간광우병의 두번째 창궐 가능성을 제시했음에도 확율이 높지 않을 것 같다는 견해를 받아들여서 패닉에 안빠지고 검역시스템 믿으며 쇠고가 잘 먹고 있지 않습니까. 100%가 아니더라도 높은 확률의 선택을 하는게 비합리적이진 않을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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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다가 뭔가 굉장히 pain 에 가치부여를 하시는데 pain system 은 사실 걍 진화를 통해 얻어진 생존 도구입니다. 자신에게 위해가 될만한 것을 미리 피하거나 닥쳤을 때 피하기 위한 도구 인 것이지요. 이 시스템이 쓸만해서 계속 물려받고 있는 것이고요."

->이에 대해서는 이미 저도 다른 덧글에서 같은 내용의 의견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윤리적 기준을 만든다면 좀 다르죠. 말씀하셨다시피 우리가 경험해봤기에 여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고 우리가 경험하는 정도의 고통을 느낀다고 여겨지는 생명체를 기준으로 삼자는 것이고요.

그리고, "지나치게 인간 중심적, 동물 중심적인 카르텔 같이 보이네요."에 대해서는 (지겹지만)저는 또다시 서구 국가에서 이미 실험현장에 3R 원칙을 법제화 한 사례를 들어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Commented by nox at 2008/09/07 23:50 
jeajvyfa 님의 말씀이 잘 이해가 안가는게

1. 인간 <-> (인간 외) 척추동물 과의 상호 관계에 있어 (인간 외) 척추동물에게 인간과 비슷한 pain 기작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right 를 최소한 지켜주자라는 의견은 이미 상당부분 받아들여졌고 3R 원칙과 같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동의하고요.

2. 하지만 인간, (인간 외) 척추동물, 그 외의 생명체 이렇게 셋의 관계에 있어 그 외의 생명체는 척추동물과 달리 (척추동물이 가지고 있는) pain pathway 가 없기 때문에 먹는것은 윤리적이다. 라는 문제는 1번 문제와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인간, (인간 외) 척추동물 비슷한 pain system 을 가지고 있지만 그 외의 생명체는 아직 잘 모른다 상황입니다. (정확하게는 있는지/없는지 가 아니라 어떠한 형태인지 모르겠다 입니다.) 따라서 셋을 동일한 잣대로 어떠한 행동 (이 문제에서는 먹는다 겠지요) 을 할 수 있다 없다 혹은 어느정도까지 된다라는 판단을 내리는 것은 "과학적인 잣대로는" 불가능하다 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2번 문제는 과학적으로 어떠한 fact 가 있어서 된다/안된다 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 좀 어렵습니다. 그래서 어떠한 가치를 가지는 사람이냐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올 수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종교적" 이다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Commented by jeajvyfa at 2008/09/08 05:41
이곳에서 1번에 동의하는 현직 과학자를 만난 것만도 무척 감격스럽군요. 윤리적 기준을 정하는데에 과학이 역할을 한다는 것 자체가 헛소리라고 하는 분들이 계셔서 말이죠.

2. 말씀하신 것 중에 애매하게 들리는게 있군요. "정확하게는 있는지/없는지 가 아니라 어떠한 형태인지 모르겠다 입니다" ->있는지 없는지는 확실한데 형태가 뭔지 모른다는 말씀이신지요. 어떠한 형태인지 모른다가 중요한 상황이라면 님은 있는 것은 확실하다고 보신다는 뜻이 되는 것 아닙니까. 있지도 않은 것의 형태를 탐구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과학에서 이에 대해 실증적으로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외의 생명체들에도 외부의 위험을 회피하는 시스템은 대부분 갖춰져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시스템에서 고통을 느끼게 하는 기작이라고 할 만한 것이 발견된 적도 없습니다. 또한 진화생물학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이 그런 기작을 갖는게 오히려 그들에게 불리하다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고통'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계신게 아닌가 싶습니다.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고통이라는 기작을 우연히 습득한 척추동물과 일부 무척추 동물이 종을 유지할 수 있게 된 이유를 생각해 보십시오. 고통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생각해보시면 됩니다. 고통을 느끼는 기작은 위험 요소에 대해 무척 과민한 반응을 만들어 내고 학습이 가능한 정도의 고도로 발달된 시스템을 갖춘 개체로 하여금 향후 그 위험 요소에 대해 높은 확률로 '물리적인 접촉을 미리 회피'하게 하도록 학습하게 만듭니다. 높은 확률로 위험 회피를 가능케 하는 시스템입니다. 즉, 학습기능이 없는 개체가 고통을 느끼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은 무척 불리합니다. 고통은 오히려 회피 움직임을 방해합니다. 이렇게 학습능력을 고려하면 무척추 동물들도 고통을 느낄 것 같지만 위의 인용문장이 보여주듯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님도 읽어보신 그 아티클의 한 문장을 인용해 보죠.

"Insects, for example, will continue with normal activity even after severe injury. An insect walking with a crushed tarsus (lower leg) will continue applying it to the ground with undiminished force."

고통을 느끼는 개체가 뭉게진 다리에 힘을 빼지 않고 땅을 디딜것이라고 여겨지십니까. 왜 아무런 도움도 안되는 그런 기작을 진화의 과정에서 얻겠습니까.(정확히는 그런 종이 왜 진화의 과정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물리적 접촉을 미리 회피할 수 있게 된 데에 '고통'의 기작이 관여하지 않는 것이죠.

인간은 고속도로에 뛰어들지 않습니다. 학습능력이 부족한 동물들은 인간 보다 훨씬 자주 뛰어듭니다만, 그들 역시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물체가 위험하다는 학습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식물들은 기회만 있으면 갈라진 아스팔트 사이에서 싹을 피웁니다. 고통의 기작을 갖춰서 회피를 하는 대신 자동차 바퀴에 의한 지속적인 충격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조직을 갖고 생존합니다. 역겁의 시간이 흐른 후 식물들이 고속도로에 싹을 피우지 않게 될지도 모르죠. 이것이 진화의 과정에서 우연히 습득한 '아스팔트 에서는 싹을 틔우지 않게 하는 유전자' 덕분이 아니라 학습덕택이라면 우린 가이아 이론 비슷한 것을 받아들여야 하겠죠.

그리고, 거듭 말씀드리지만 다른 분들이 막말로 공격을 위해 "과학이 어떻게 윤리를 결정하냐?"고 제 주장을 왜곡하시죠. 전혀 틀렸다고 볼 수는 없지만 남들이 제 주장을 오해하게 만들기 무척 쉬운 문장이죠. 다른 곳에서도 밝힌적이 있지만 제가 제 블로그에 이곳의 덧글들을 옮기면서 올린 포스트의 제목도 "윤리적 결단은 과학에게 자문을 구하는가?"입니다. 생명의 고통을 최소화 해야 한다는 윤리적 판단이 과학적 근거를 갖는지에 대해 과학에게 질문을 했을 때 과학은 고통을 느낄 확률이 가장 낮은 것은 식물이다라는 정도의 자문을 해주는게 가능합니다. 백보 양보해서 제가 '과학이 그런 윤리적 기준을 만들어낸다(혹은 현실에서 과학이 윤리에 선행한다)'는 의미로 오해할 만한 표현을 썼다고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그런 오해로 인해 논점이 흐려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Commented by kafkaesk at 2008/09/07 23:54
아니 화제의 저 분은 진화생물학 운운하시는데 일반생물학도 안배우신 분이에요, 보니까. 전 동물 실험도 하지만 primary cell culture (human, mouse 모두)도 하는데 저 분이 그 과정을 보면 생명체를 어떻게 정의할지 궁금해져요. 스트레스를 줬을 때 세포가 죽기 싫어서 NF-kB 활성화되는걸 보고 우실지도 몰라요.

 Commented by 기불이 at 2008/09/08 01:33
그건 고통이 아니라 생존본능이야 라고 하겠죠.

 Commented by jeajvyfa at 2008/09/08 05:49
기불님이 제대로 답해주셨네요.

덧붙이자면 님이 보이시는 반응은 인간의 학습 능력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통을 느낄 때 하는 반응과 유사한 반응을 보이는 개체를 보고 오해를 하는 것이죠. 생명에 대한 과학적 정의가 아직 명확하지는 않지만 '생명=고통을 느끼는 존재'라고 정의하지는 않죠. 여러번 말씀드리지만 '죽기 싫어 하는 행동(종 보존을 위한 본능)'이 고통을 느낀다를 입증하는 충분조건이 아닙니다. 실험만 하지 마시고 공부 좀 하세요.

 Commented by kafkaesk at 2008/09/08 08:04
공부가 직업이고, 코스웍은 진작에 끝났어요. 저기, 생리학책 한글로 나온 좋은 책 많으니까 가볍게 사서 읽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jeajvyfa at 2008/09/08 10:26
지금 그게 반론인가요? 세포가 죽기 싫어서 NF-kB 활성화되는 과정에 고통을 느끼는 기작이 관여한다고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설명해 주세요.

 Commented by nox at 2008/09/08 12:10 
한가지 jeajvyfa 님께 궁금한 것이 있는데 혹시 전공분야가 과학쪽이 아니신지요? 제가 언급한 2 번 기술을 완전히 다르게 이해하고 계시네요. 게다가 지금 답변하시는 것들 중 생물학 (진화생물학을 포함해) 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설명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제가 읽어봤다고 하시는 그 아티클은 제가 이미 언급했지만 "그다지 인용할 만한 아티클은 아니다" 였습니다.

제가 지적했던 부분

- 척추 동물을 넘어서는 도메인에서의 잣대로 척추 동물 만 가지고 있는 nociceptor 기반의 pain system 을 가지고 윤리 결정을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어불성설입니다. (그래서 제가 카르텔이라고 지칭했던 것이고요)
- 또한 위의 문제와 별개로 고통의 유무가 대상 생물을 먹어도 되느냐 마느냐의 지표가 되느냐는 전혀 다른 가치 문제입니다.

그리고 척추 동물에 제가 계속 한정하고 있긴 하지만 사실 nociceptor 기반의 pain system 은 바다에 사는 민달팽이랑 초파리도 가지고 있습니다. 민달팽이는 고통의 long-term memory 연구에 많이 사용되었고요. 차라리 인간과의 유전적 친화도를 가지고 식용 여부를 따지는게 속편하지 않을까요? : )

 Commented by jeajvyfa at 2008/09/08 15:09
첫번째 질문은 짜증나는 질문이군요. 슬쩍슬쩍 잘 찌르십니다. ^^

"사실 nociceptor 기반의 pain system 은 바다에 사는 민달팽이랑 초파리도 가지고 있습니다."->이거야 말로 저한테 말씀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여기 저기서 인용한 자료들 중 어딘가에 이미 비슷한 내용들이 있었습니다. 제 부탁을 안 들으셨군요.

그 아티클은 위에 소개해드린 84년도 논문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인정합니다. 별로 그 수준 이상의 논문은 없습니다. 그래서 바로 뒤이어 과학잡지의 기사 하나를 링크해드리면서 기껏해야 그 수준으로 정리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했고요.

"nociceptor 기반의 pain system 을 가지고 윤리 결정"->윤리를 결정하는게 아니라 고통을 느끼는 능력의 유무를 추측한다고 쓰셔야 합니다. 위에서 그렇게 오해하지 말라고 부탁드렸습니다만. 님도 결국 남들과 별로 다르지 않으신 겁니까.

거듭 설명드리는데... 진화의 과정을 봤을 때 nociceptor 혹은 그와 비슷한 어떤 것이 관여하는 방식으로든간에 고통을 느끼는 능력을 식물이 습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식물은 그들에게 맞는 가장 효율적인 기능을 갖춘체로 진화해 왔을 것이고 식물의 생태를 보건데 고통을 느끼는 능력은 오히려 방해된다는 설명입니다만... 솔직히 지겹습니다. 위에서 영화에나 등장하는 가이아 이론을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죠.

조금 다른 설명을 해보자면, 동물의 경우 신경계에서 신호가 전달될 때 다른 조직에 영향을 끼치지 않고 한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전달된다고 하죠. 피부를 바늘로 찌르면 뇌로 전달되서 그 부위가 아프다고 느낄 테고요. 다른부위들도 아프다고 느끼진 않죠. 반면 식물의 경우 한 곳에서 발생한 신호가 그 식물의 거의 모든 세포에게 광범위하게 전달됩니다. 반면 발생된 신호가 아주 짧은 시간동안만 지속되는 만큼 반응 역시 무척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나고요. 그래서 다행히 빠른 시간안에 반응을 끝낸 뒤 다시 항상성을 유지시킬 수 있죠. 만약 이 과정에 고통이 끼어든다면 무척 불리한 시스템일 겁니다.

그리고,
"위의 문제와 별개로 고통의 유무가 대상 생물을 먹어도 되느냐 마느냐의 지표가 되느냐는 전혀 다른 가치 문제입니다."
"척추동물에게 인간과 비슷한 pain 기작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right 를 최소한 지켜주자라는 의견은 이미 상당부분 받아들여졌고 3R 원칙과 같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동의하고요. "
이 두 문장은 모순되는 군요.

참, 제 덧글들을 살펴보지 않으신 것 같아서 말씀드리는데, 식물도 고통을 느끼는 것 같다는 근거로 자주 인용되는 벡스터 효과라는게 있습니다. 한번 찾아보시길.

 Commented by nox at 2008/09/08 15:57
"위의 문제와 별개로 고통의 유무가 대상 생물을 먹어도 되느냐 마느냐의 지표가 되느냐는 전혀 다른 가치 문제입니다."
"척추동물에게 인간과 비슷한 pain 기작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right 를 최소한 지켜주자라는 의견은 이미 상당부분 받아들여졌고 3R 원칙과 같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동의하고요. "
이 두 문장은 모순되는 군요.

빙고! 왜 jeajvyfa 님이 문제에서 겉돌고 있는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님께서 다른 모든 사람과 논쟁을 하고 있는 지점은 이 지점인듯 싶네요.

 Commented by jeajvyfa at 2008/09/08 16:32
nox님이야 말로 이 논쟁이 겉돌게 하고 싶은 욕망이 넘치시나 봅니다. 하던 얘기나 계속 하시죠. 벌써 바닥인가요?^^

 Commented by nox at 2008/09/08 22:46
사형을 집행함에 있어 사형수의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을 위해 최소한의 고통으로 죽는 방법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형수가 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해당 사형수에게 사형을 집행 하는 것을 철폐하거나 사형제도 자체를 (고통이 원인이 되어) 재고하지는 않지요.

모기불님 죄송합니다. 냉정하게 살펴보니 떡밥을 계속 던진 것 같습니다. 거듭 죄송합니다.
그리고 전전두엽의 특정 시냅스가 hard pairing 혹은 imparing 되어 있는 환자는 이비인후과가 아니라 신경외과에 문의하셔야 합니다.

 Commented by 기불이 at 2008/09/08 22:59
nox// 아니 저는 설마 뇌가 문제이겠는가.... 그냥 귓구멍이 막힌 거겠지, 이런 생각으로 이비인후과를 권해봤죠...

 Commented by nox at 2008/09/09 00:43
벡스터 효과는 *의사과학* 입니다.

 Commented by jeajvyfa at 2008/09/09 03:51 
nox님, 밑천 바닥나서 도망치는 꼬라지 치고는 말이 많네요.

"하지만 사형수가 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해당 사형수에게 사형을 집행 하는 것을 철폐하거나 사형제도 자체를 (고통이 원인이 되어) 재고하지는 않지요."

이쪽으로 논점 바꾸고 도망가려는 걸 보니 앞에껀 확실히 밑천이 바닥난 거고... 난척을 하지 말던가. 어설픈 비교는 약점 잡히기 쉽기 때문에 함부로 쓰지 않는게 좋거든요. 사형수야 죽어도 싸다고 법적 판결이(난 동의 안하지만) 났다는 전제니까 죽이는 것 이외의 대안은 없으니 어떻게 안락사 시킬꺼냐는 논쟁만 남죠. 우리나라야 목매달아 죽이지만 서구에서는 고통을 주면서 죽이는 건 기본권 침해라고 보거든요.(얼마전에 주사제를 이용한 사형방법이 사실은 고통을 없애지 못한다는 논문이 나와서 사형제도 바꿔야 한다는 논쟁이 미국에서 있었듯이 말이죠.) 이것도 모순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반면 먹는 문제는 대안이 있으니까 비교할게 안되거든요.

그리고 거듭 말하지만 어째 이 교도들은 남 말을 지 멋대로 듣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걸도 인지부조화인가. 제가 말했죠. 나도 현실적으로지 지지하는건 animal welfare까지라고. 단 현실적으로 animal right이 대중적 동의를 얻기는 어렵겠지만 나름의 논리와 근거는 가지고 있으니 윤리적 기준이 될 가능성은 있는 것이라고.(아예 비논리적이라 하겠지만, 한 30년 전까지만 해도 님이 동의한다는 3R 원칙도 비슷한 취급을 받았을 겁니다. 철학, 사회학적 논의와는 별도로 과학계에서는 동물의 고통을 느끼는 능력에 대한 뚜렷한 증거가 없어 증명이 안된다는 이유로 동물의 행동은 오로지 본능 때문만이라고 주장하며 신이 만든 인간의 우월성을 고집하는 기독교계 과학자(?)들 때문에 동물이 고통을 느낀다는 것을 전제로 한 윤리는 설 틈이 없었거든요) 자꾸 엉뚱한 소리를 하시는 걸 보니 제가 부탁한 것 안들으셨군요. 남하고 논쟁할 때는 남이 뭐라 하는지 일단 제대로 파악이나하고 시작하세요. 안그러면 본인이 아무리 막말을 하면서 방어를 하든 망신만 당합니다.


벡스터 효과가 유사과학인 걸 저한테 확인해달라 하실 필요는 없어요. 내가 뭐라하는지 좀 읽고 오라는 부탁을 무시했기 때문에 그러나 본데 이미 한번 나왔거든요. 이걸 꺼낸건, 꼴을 보아하니 님이 혹시 그걸 마지막 지푸라기로 잡을 것 같아서 말이죠.


혹시라도 아직 일말의 진지함이 남아있다면 제 블로그로 오세요. 얼마든지 상대해 드릴테니까. 단지 배설에 대한 욕망만 남아있다면 여기서 계속 푸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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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기불님의 글 [식물은 고통을 느끼는가?(http://mogibul.egloos.com/3893529)]와
[상식인이 "고통을 최소화 한다는 윤리적 기준을 받아들인다면"?(http://mogibul.egloos.com/3893808)]에 트랙백으로 걸어놨습니다.

나비의일견식님의 [채식주의에 있어서 왜 항상 '식물의 고통'이 문제되는 걸까?(http://psycheview.egloos.com/2044243)]에도 보냈습니다.


덧. 혹시나 해서 밝히지만 여기에 기불님 글, 덧글 및 의견을 제시한 이들의 글들과 제 반응들을 다시 퍼오는 것은 계속 반론을 제기하고픈 사람들에게 두 블로그를 오가며 오고간 내용을 확인할 수고를 덜어주기 위함입니다. 또한 토론 공간을 이쪽으로 옮겨와, 남을 비난할 목적으로 비과학적 썰을 풀은 뒤 반론을 접하자 거듭 토론 거부 의사 표현을 하신 모기불통신 블로그 쥔장을 배려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덧글을 다실 분들은 제발 부탁이지만 대충이라도 훑어 보시고 남이 안한 얘기 가지고 트집 잡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by 적안 | 2008/09/06 14:46 | 트랙백 | 덧글(6)

윤리적 결단은 과학에게 자문을 구하는가?

아마 많은 분들이 기불님이 '채식은 윤리적인 결단인가?(http://mogibul.egloos.com/3884108)'라는 글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여기에 '과학적 판단'을 내리려는 시도 자체가 과학을 강간하는 행위라는 주장에 동의하시는 것 같은데... 전혀 아닙니다. 뭘 모르시는 말씀이죠. 윤리적 기준을 정하는데에 과학적 판단이 근간이 되는 경우는 허다합니다. '낙태'가 대표적인 예죠. '동물 학대'도 그렇겠군요. '수정란'이 인간인가 아닌가에 대한 윤리적 기준을 법제화 하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으로 과학에게 의견을 묻습니다. '동물 학대'에 대한 윤리적 기준을 법제화 하기 위해서도 어디까지가 동물 학대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고통'을 느끼는지의 여부를 과학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제가 어딘가에 링크해 놓은 캐나다 의회의 자료가 그 예입니다. 물론 채식주의자들이 제시한 기준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소원해 보입니다. 윤리적 기준이라는게 과학에 입각해서 엄격하게 정의되는게 쉽지 않거든요. 자기 밥그릇이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에요.

기불님이 자존심에 집착하지 않으셨다면 좀 더 재밌는 토론이 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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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기불님의 끈질긴 딴소리 신공, 팬덤 자극하기 신공에 지쳐서 여기서 마무리 할 생각. 육류를 먹는것은 당연한 상식이므로 거기에 윤리고 자시고 따질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계속 하시는 듯 한데... 난 이걸 '기불교주 말씀 1장 1절'이라 칭하고 싶다. 사실 더 힘든건 기불님 한마디를 무슨 교리인 양 철썩 같이 믿고 '빠' 놀이를 하는 일부 리플러들.

로그인용으로 만들어 놓은 이 블로그에 굳이 포스트 하나 올리는 건, 그나마 모기불 블로그의 쥔장님을 배려할 성의가 조금은 남아 있기 때문에. 다른 리플러들 중에 할 말 있으신 분들은 여기서 하시라고. 의지도 없고 능력도 없어보이는 기불님 집에서 판 벌리는 건 나도 더이상 싫다. 팬덤들 중에 막말 달려고 여기까지 오는 노력을 할 사람은 없을 것 같긴 한데...

윗 글은 http://mogibul.egloos.com/3892188 여기에 달아 놓은 덧글 중 일부임.


--------------- 추가 -----------------------------

전후 사정도 모른체 교주가 찌질이로 선언했다고 찌질이 취급하는 교인들이 꽤 있네. 이 들 중에 그나마 싹수가 좀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간에 교주님 댁에 남겨놓은 글들을 모아보기로 했음. 상황 파악 안되는 교인들은 먼저 읽고 반응하시길. 진한 글씨는 기불교주가 쓴 글이고 그 아래에 내가 적은 것들과 반응한 것들을 모아 놨음. 가끔 등장하는 '적안'은 내 로긴 네임. 순서는 기불교주가 쓴 글 순서. 시간순서가 아님.



채식은 윤리적인 결단인가?(http://mogibul.egloos.com/3884108)


 Commented by jeajvyfa at 2008/08/30 17:07 
하하, 식물의 특이적 전기 신호를 동물이 느끼는 '고통'과 같은 선상에 놓는게 과학적 관점인지 잘 모르겠군요.
 

제가 알기로는 척추 동물과 일부 무척추 동물이 '고통'을 느낀다고 알고 있습니다. 벌레가 고통을 느끼는지 아닌지도 정확하지 않고요. 일부 벌레가 고통을 느끼는 것 같다는 연구가 있었던 것 같긴 합니다만... 식물이라... 식물이 고통을 느끼는지 여부는 아직 과학의 손이 닿지 않는 영역일 것 같은데요. 식물도 고통을 느낀다는 주장이 오히려 종교에 가까운 것 아닌가요?

고통을 '육체적 고통'이라고 정의한다면 아마도 nociceptor의 존재 여부가 고통을 느낄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과학적 기준이 될겁니다. 식물에서 이게 존재한다는 연구 결과는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말이죠. 혹시 알고 계신게 있나요? '정서적 고통'같은 정의를 받아들인다면 식물에게 '정서'가 있다는 주장을 해야 하고 말이죠.

하긴, 인간을 제외한 다른 척추동물들이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받아들여진 것이 아마 한세기도 안되었을 겁니다. 이걸 생각하면 어쩌면 식물도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 얼마 안있어서 과학적으로 밝혀질 지도 모르겠죠.

찾아보니 곤충에 대한 것이긴 한데 재밌는 글이 있어서 문장 하나 인용해 옵니다.

http://www.parl.gc.ca/37/2/parlbus/commbus/senate/Com-e/lega-e/witn-e/shelly-e.htm

Because bacteria are not thought to be capable of feeling pain (e.g. they lack a nervous system), possessing an escape response to an aversive stimulus is not enough evidence to demonstrate that a species is capable of feeling pain.

그리고 '눈물 흘리는 것을 슬픔의 표현'이라고 정의했을 때 나타나는 모순을 들어서 설명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슬픔의 표현 방식을 눈물 흘리는 것 만으로 정의한다고 가정하는게 비현실적이라서요.






채식교의 사회봉사.(http://mogibul.egloos.com/3889473)


 Commented by jeajvyfa at 2008/09/03 11:31 
하하, 짜증나는 토론(?)이군요. 그나저나, 너무 채식'교'라며 나무라지 마십시오. 식물이 고통을 느낀다는 주장도 종교와 맞먹습니다.

 Commented by 기불이 at 2008/09/03 12:00
식물이 고통을 느끼느냐 마느냐 라는 주제로 가게 되면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동식물이 고통을 느끼든말든 나는 먹고 살아야 하겠다 라는 반석같이 굳건한 입장에 발을 디디고 서야 함정에 빠지지 않는 법.

 Commented by jeajvyfa at 2008/09/03 13:19 
하하... 식물이 고통을 느끼느냐 마느냐는 주제는 함정에 빠질 수 없는 것이거든요. 채식주의자가 고통의 지각능력을 기준으로 식물과 동물의 차이점을 교묘하게 과장 혹은 왜곡했기에 '애먼 과학을 갖다붙이는'는 행위라고 비난하셨었죠. 하지만 과학계에서도 식물이나 일부 무척추 동물이 보이는 위험 회피 행동만으로는 그 개체가 고통을 느낀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질 않는다고 본다는 점을 모르셨던 듯 합니다. 과학에서 말하는 '고통'의 정의에 대해 미쳐 잘 모르셨던 듯.

미리 말씀드리지만... 논점이 잘못 흐르면 '전쟁나가서 즉사하지 못한 아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는 어미의 행위는 비과학적인가?'라는 질문에 이르게 될지도 모릅니다. 예전에 비슷한 패턴을 봐서요. 뭐, 누군가가 어쩌면 기발한 반론을 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좀 있기도 하지만요.

아, 그리고 정답이라고 평하신 '정치적 이유'도 기불님이 보시기에 정답 아닌 것들이 수두룩 할 겁니다. 현대 정치는 '과학적' 근거, 대표적으로 통계에 기반하기 마련이죠. 예를 들어, "지나친 육식이 제 3세계 국가의 농업을 초토화 시키고... 여기서 이윤을 취하는 국제 자본에 반대..." 이런것들 이거든요. 그동안 비슷한 것들 많이 비판하셨던데.

 Commented by 기불이 at 2008/09/03 22:24
채식주의란 것은 본질적으로 종교이고 취향의 문제인데 이 교리내에서는 식물은 고통을 못느끼고 동물은 느끼니 식물을 먹자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나간단 말이죠. 그러므로 식물은 고통을 느끼니 못느끼니 하는 이야기에 붙들리면 결국 교리에 갇히므로 결론이 안나게 되죠.

"애먼과학을 갖다붙이는 행위" 는 말하자면 그쪽에서 과학을 이용해서 교리를 정당화하였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고.


"정치적이유" 라고 하면 내가 반론할 이유가 없어요. 그쪽의 정치적취향이 그렇다는데 뭐라고 하겠어. 그러나 "과학적이유" 라고 하면 정의상 충분히 반론가능하지만 사실은 그것이 과학적 근거는 쥐뿔도 없고 다만 정치적이유 혹은 종교적이유이기 때문에 반론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야기가 계속 다람쥐 쳇바퀴돌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정치적이유가 정답이라고 하는 것이죠. 그래야 불필요한 시간낭비를 줄이니까.


그러나 그 정치적이유란 것이 "지나친 육식이 제 3세계 국가의 농업을 초토화 시키고... 여기서 이윤을 취하는 국제 자본에 반대..." 이런 식으로 팩트를 왜곡하고 "애먼과학을 강간" 하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이고.



식물이 고통을 느끼든 말든 중요한 게 아니다.(http://mogibul.egloos.com/3890998)


 Commented by jeajvyfa at 2008/09/04 07:00 
에효, 말씀하신데로 다람쥐 쳇바퀴 돌고 있는데 말이죠. 이유는 기불님이 '채식은 종교다'라고 단정하시고 채식주의자들이 과학적 근거를 제공하려는 시도를 '방주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증명하려는 행위'와 비교하고 계시기 때문이죠. 과학적 근거는 쥐뿔도 없다고 하시고요. 하지만 적어도 '고통을 덜 주기 위해' 채식을 하는 사람들은 충분한 과학적 근거가 있다는 점을 이제 그만 인정하셔야 쳇바퀴가 멈출 것 같습니다. 식물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는 과학적 근거를 보여주시지 못하고 있잖습니까. 그것도 그렇게나 엄격한 실증주의자이신 모기불님께서요.(아마 뭔가 좀 찾아내서 보여주시지 않을까 했는데 말이죠.)

식물도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 과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라는 것을 증명하는 논문 몇편 소개해 주셔야 '식물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교리'라는 등식을 증명하고 기불님 논리의 대전제(위에 1번에 쓰신 것)가 참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죠.

식물이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본다는 과학적 근거는 꽤 있는데 말이죠. 제가 지난번에 소개해드린 웹문서에도 논문 몇개 보이고... 귀찮으시면 아마 위키피디아에서 검색만 해보셔도 나올 겁니다. 게다가 미국에서는 별로 관심 없는 듯 한데 유럽쪽에서는 3R 원칙이라고 해서 과학자들이 실험동물의 고통을 덜기 위한 프로토콜을 정리해서 현장에 적용하고 있거든요. 한국에도 몇분 계신걸로 알고 있는데 말이죠. 이 과학자들도 종교에 입각해서 식물의 고통은 외면하고 동물만의 고통만을 배려하고 있는 걸까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식물이야 고통스럽든 말든 상관이 없어요.(http://mogibul.egloos.com/3891016)


 Commented by jeajvyfa at 2008/09/04 11:00 
쩝... 엉뚱한 소리 하지 마시고 과학적 토론이나 했으면 하는데 말이죠.

처음에는 식물이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게 비과학적이라고 하셔 놓고서는 이제와서 과학적 근거를 따지는 행위 자체가 모순이라고 하시는 군요. 그렇게 빠져나가려 하시다니, 좀 비겁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냥 애초부터 이러 저러한 과학적 근거로 식물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도로 대응하셨으면 될 것을 괜히 일을 키운게 누굽니까. "식물이 고통을 느끼든 말든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요렇게 말씀하실거면 애초에 예전에 했던 말을 취소하셔야죠.

"채식주의를 하게 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령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라는 이유로 하는 사람도 많다고 알고 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이것은 교묘하게 고안된 변명에 불과하다. 여기에는 식물은 고통을 느끼지 않고 동물은 고통을 느낀다 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채식주의란 것은 그 정의상 동물이 아니라 식물만 먹는다는 것인데 이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동물과 식물의 차이점을 궁리한 끝에 만든 변명인 것이다. 고통이란 것도 정의하기 나름이겠지만 살아있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자신의 신체가 훼손될 때 이런저런 반응을 보이기 마련이며 이 반응을 유발하는 신호를 고통의 표현이라고 정의한다면 식물도 고통을 느낄 것이고 단순히 소리지르고 발버둥치는 것을 고통의 표현이라고 정의한다면 식물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다(http://mogibul.egloos.com/3884108)"

"그러나 "과학적이유" 라고 하면 정의상 충분히 반론가능하지만 사실은 그것이 과학적 근거는 쥐뿔도 없고 다만 정치적이유 혹은 종교적이유이기 때문에 반론이 가능하지 않습니다.(http://mogibul.egloos.com/3889473)"

->그러니까, 이게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현대과학에서는 '척추동물이 고통을 느끼며 일부 무척추 동물이 고통을 느낄지도 모른다' 정도로 정리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과학적 근거를 보여드렸죠. 이게 소수 의견이던가요?(내가 링크해준 사이트가 무슨 종교 단체 사이트는 아니었을텐데?) 이제 님이 강간하고 비난하신 고통에 대한 과학에게 사과하실 차례입니다. 과학적 근거가 쥐뿔도 없다는 것을 철두철미한 실증주의자이신 기불님의 능력으로 보여주세요.

 Commented by 기불이 at 2008/09/04 11:14
ㅎㅎㅎㅎㅎㅎ

 Commented by jeajvyfa at 2008/09/04 11:59 
비과학을 비난한답시고 종교적 주장을 과학적 주장이라고 섣불리 말씀하셨다가 결국 끈질기게 딴소리 하시는 걸로 끝내시는군요. 네, 네. 제가 손 들죠. 결국 이정도였군요. 벌여놓고 감당이 안되시나 보네요. 잘 보여주시던 논문 끌어오기 신공은 어디로 갔는지...
 
Commented by wbin at 2008/09/04 11:54
애초에 기불이님이 보여드려야 할 이유는 전혀 없죠.
jeajvyfa님이 모든 과학적 근거, 논리적 근거등을 싹 제시 하고, 납득을 시켜야 하는 입장인데
오히려 증명을 요구하고 계시네요.

그것 자체가 모순입니다만
 
Commented by wbin at 2008/09/04 11:56
기불이님께는 여지껏 리플 한번 달지않고 RSS로 눈팅만 해오다가 갑자기 끼어들었습니다만.

극히 과학적인 주제이기 때문에, 명확한 과학적 근거로 납득을 시켜야지 이걸 논리적 근거로 인해 납득을 시키기 시작한다면 이미 기불이님 말씀대로 종교가 되버릴겁니다.
 
Commented by jeajvyfa at 2008/09/04 14:22 
wbin님, 님 반응은 나름 과학자인 제 자존심을 좀 긁는 것이라 그냥 넘어가지지가 않는군요. http://mogibul.egloos.com/3884108 여기 가서 제 덧글 읽어보세요. 모기불님이 틀렸다고 본다는 과학적 근거를 나름 제시했죠. 여기에 대한 과학적 반론을 조금이라도 하실 줄 알았는데 하나도 없더라고요.
 
Commented by wbin at 2008/09/04 15:03
하하, 식물의 특이적 전기 신호를 동물이 느끼는 '고통'과 같은 선상에 놓는게 과학적 관점인지 잘 모르겠군요.

제가 알기로는 척추 동물과 일부 무척추 동물이 '고통'을 느낀다고 알고 있습니다. 벌레가 고통을 느끼는지 아닌지도 정확하지 않고요. 일부 벌레가 고통을 느끼는 것 같다는 연구가 있었던 것 같긴 합니다만... 식물이라... 식물이 고통을 느끼는지 여부는 아직 과학의 손이 닿지 않는 영역일 것 같은데요. 식물도 고통을 느낀다는 주장이 오히려 종교에 가까운 것 아닌가요?

고통을 '육체적 고통'이라고 정의한다면 아마도 nociceptor의 존재 여부가 고통을 느낄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과학적 기준이 될겁니다. 식물에서 이게 존재한다는 연구 결과는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말이죠. 혹시 알고 계신게 있나요? '정서적 고통'같은 정의를 받아들인다면 식물에게 '정서'가 있다는 주장을 해야 하고 말이죠.

하긴, 인간을 제외한 다른 척추동물들이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받아들여진 것이 아마 한세기도 안되었을 겁니다. 이걸 생각하면 어쩌면 식물도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 얼마 안있어서 과학적으로 밝혀질 지도 모르겠죠.

찾아보니 곤충에 대한 것이긴 한데 재밌는 글이 있어서 문장 하나 인용해 옵니다. http://www.parl.gc.ca/37/2/parlbus/commbus/senate/Com-e/lega-e/witn-e/shelly-e.htm

Because bacteria are not thought to be capable of feeling pain (e.g. they lack a nervous system), possessing an escape response to an aversive stimulus is not enough evidence to demonstrate that a species is capable of feeling pain.

그리고 '눈물 흘리는 것을 슬픔의 표현'이라고 정의했을 때 나타나는 모순을 들어서 설명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슬픔의 표현 방식을 눈물 흘리는 것 만으로 정의한다고 가정하는게 비현실적이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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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댓글을 말씀하신거라면 읽어봤습니다. 이미.
일단은 어디가 과학적인지 물어보고 싶구요. 제가 봣을때는 논리도 과학도 아닌 감성적인 글인데요.

더군다나 "하하, 식물의 특이적 전기 신호를 동물이 느끼는 '고통'과 같은 선상에 놓는게 과학적 관점인지 잘 모르겠군요." 라는 문장을 보고 감동(안좋은뜻입니다)를 받았습니다.

식물이 자극을 받았을때 느끼는 특이한 전기 신호와 동물 (인간 포함)이 자극을 받았을때 신경과 신경을 이어 전달되는 전기 신호와의 차이점이 과연 무엇인지 알고 싶은데요.

그리고 과연, 님이 주장하신대로 뇌를 강조 하신다면, 님이 주장하시는 인간이 느끼는 고통과 동물이 느끼는 고통이 같은 것이라고 단언할수 있으신지요.
 

Commented by jeajvyfa at 2008/09/04 15:26 
wbin 님//모기불님이 싫어하실 것 같아서 여기서 계손 토론을 해도 좋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전기신호 자체의 차이가 있고 없음이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는게 아니죠. 잘 못 알아들으신 듯. 뉴런에서 전달되는 전압이 고통인가?라고 반문해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님이 주장하신대로 뇌를 강조 하신다면, 님이 주장하시는 인간이 느끼는 고통과 동물이 느끼는 고통이 같은 것이라고 단언할수 있으신지요."

->이 질문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시고 질문하신 건가요? 특히 님이 과학자시라면 더욱.

이 주장은 '동물도 지적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고통을 느낀다'는 동물행동학자들의 연구결과들에 대해 미국의 과학교사(사실은 기독교계)들이 반문하던 것과 똑같습니다. 예전에 읽어본 텍스트라서 구체적인 방법론이 기억 나지 않습니다만, 대충 60, 70년대쯤에 정리된 논쟁이 있습니다. 동물행동학자들이 20, 30년쯤 동안 계속 트집잡는 기독교계 (사이비)과학자들과 지난하게 싸워온 과정이 있습니다. 이 종교인들이 실험방법의 약점을 찾고 과학자들은 다시 더 완벽해 보이는 실험을 설계해서 실행하죠. 동물행동학자들의 실험은 주로 긴 관찰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끈질기고 지루한 노력이 필요했을 겁니다. 그 과정에 대한 설명을 읽어보시면 '이게 과학이야'라며 감탄을 하실 것이라고 장담합니다만... 솔직히 십여년전에 읽었던 것이라 어느 텍스트였는지 기억이 안나는군요. 한참 뒤져보면 다시 나올것도 같지만요. 참, 중요한 결론은 그쪽에서 도출된 결론 중의 하나가 동물도 고통을 느끼지만 인간의 것보다는 더 단순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정서 자체가 더 간단해서요. 뇌기능의 차이를 생각해 봐도 당연하겠죠. 단언할 수 있냐고요? 과학자들이 100%라는 말은 안쓰죠. 황구라가 아닌한.

저기, 님은 그나마 진지하게 대응해주시니 저도 진지하게 묻겠습니다. 과학계에서 '복잡한 신경계를 가지고 있지 않은 무척추 동물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 명제를 가지고도 '식물도 고통을 느낀다'는 명제를 과학계의 일반적 견해로 볼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Commented by jeajvyfa at 2008/09/04 15:28 
참 한가지 더,

"제가 봣을때는 논리도 과학도 아닌 감성적인 글인데요."

->뭐 그렇게 까지 폄하되니 기분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만... 네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과학적 근거 하나 없었던 모기불님 글에 대한 반응 치고는 좀 더 과학적이었다고 생각됩니다.

 Commented by jeajvyfa at 2008/09/04 15:39 
wbin 님 죄송합니다. 하나만 더. 무척추 동물이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 본다는 견해에 대한 과학적 근거 제시가 부족했던 것 같아서요. 이 부분 만큼은 확실하게 하자는 취지에서...

제 덧글에서 인용한 캐나다 의회 자료의 참고문헌중 하나의 저자가 쓴 다른 논문이 있습니다.(찾아놓고 보니 이게 그거였네요)

http://www.springerlink.com/content/k424313511661146/

옛날 논문이긴 합니다만 최신의 견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Commented by zetaloki at 2008/09/05 01:30 
논리에 대한 매우 기초적인 지식이 있다면, 현재 논란에서 '식물이 고통을 느끼는가'를 증명할 필요는 있지만, '식물이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을 증명할 이유는 없다는걸 아실 겁니다. 이중 부정의 증명 불가부터 논리를 펴나가는건, 비주류 학자(라고 불리길 바라는 사람)들이 하는 대표적인 삽질이지요.

 Commented by jeajvyfa at 2008/09/05 03:02 
제대로 된 독해능력이 있다면 현재 논란에서 '식물이 고통을 느낀다'에 대한 증명 혹은 근거를 빼놓고 넘어간 것에 대해 '식물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보는게 과학계의 일반적 견해'라고 반론한 것임을 아실 겁니다.


jeajvyfa 는 빨리 병원에 가봐라.(http://mogibul.egloos.com/3891309)


 Commented by jeajvyfa at 2008/09/04 14:31 
중요한것 하나를 빼먹으셨는데요. 일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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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ogibul.egloos.com/3884108

하하, 식물의 특이적 전기 신호를 동물이 느끼는 '고통'과 같은 선상에 놓는게 과학적 관점인지 잘 모르겠군요.

제가 알기로는 척추 동물과 일부 무척추 동물이 '고통'을 느낀다고 알고 있습니다. 벌레가 고통을 느끼는지 아닌지도 정확하지 않고요. 일부 벌레가 고통을 느끼는 것 같다는 연구가 있었던 것 같긴 합니다만... 식물이라... 식물이 고통을 느끼는지 여부는 아직 과학의 손이 닿지 않는 영역일 것 같은데요. 식물도 고통을 느낀다는 주장이 오히려 종교에 가까운 것 아닌가요?

고통을 '육체적 고통'이라고 정의한다면 아마도 nociceptor의 존재 여부가 고통을 느낄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과학적 기준이 될겁니다. 식물에서 이게 존재한다는 연구 결과는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말이죠. 혹시 알고 계신게 있나요? '정서적 고통'같은 정의를 받아들인다면 식물에게 '정서'가 있다는 주장을 해야 하고 말이죠.

하긴, 인간을 제외한 다른 척추동물들이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받아들여진 것이 아마 한세기도 안되었을 겁니다. 이걸 생각하면 어쩌면 식물도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 얼마 안있어서 과학적으로 밝혀질 지도 모르겠죠.

찾아보니 곤충에 대한 것이긴 한데 재밌는 글이 있어서 문장 하나 인용해 옵니다. http://www.parl.gc.ca/37/2/parlbus/commbus/senate/Com-e/lega-e/witn-e/shelly-e.htm

Because bacteria are not thought to be capable of feeling pain (e.g. they lack a nervous system), possessing an escape response to an aversive stimulus is not enough evidence to demonstrate that a species is capable of feeling pain.

그리고 '눈물 흘리는 것을 슬픔의 표현'이라고 정의했을 때 나타나는 모순을 들어서 설명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슬픔의 표현 방식을 눈물 흘리는 것 만으로 정의한다고 가정하는게 비현실적이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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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불님은 과학자가 세상에 혼자뿐 인 줄 아시나 봅니다. 예전에 두루*라고 유명한 황빠가 한명 있었는데... '싸놓고 안치우고 도망가기'로 유명했었죠.

 Commented by 기불이 at 2008/09/04 14:34
나는 이건 못봤어요.

 Commented by ㅋㅋㅋㅋ at 2008/09/04 23:32
두루미 = 모기불 뭔가 신빙성 있음.

 Commented by jeajvyfa at 2008/09/04 14:58 
유치하네. 초딩 말싸움도 아니고.

참, 차례대로 보여주신다면서요.

 Commented by 기불이 at 2008/09/04 14:58
제가 본 차례대로 보여드렸습니다만.

jeajvyfa 는 지금...(http://mogibul.egloos.com/3891424)


 Commented by jeajvyfa at 2008/09/04 16:28 
하하, 저 뒤쪽에서 덧글 좀 달다 왔습니다만.

아마 님은 '난 첫번째 반응은 못봤으니 내 잘못 아님'으로 밀고 나가기로 전략을 짜셨나 봅니다. 자꾸 그러지 마시고 님이 쓰신 첫번째 글을 상기하세요.

http://mogibul.egloos.com/3884108

식물이 고통을 느끼느냐 마느냐는 논제를 먼저 꺼내 놓으셨죠.

"여기에는 식물은 고통을 느끼지 않고 동물은 고통을 느낀다 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채식주의란 것은 그 정의상 동물이 아니라 식물만 먹는다는 것인데 이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동물과 식물의 차이점을 궁리한 끝에 만든 변명인 것이다. "

또, "과학적으로 볼 때 노아의 방주는 과학적 사실이고 증거도 있다. 옛날에 미국의 어떤 과학자가 어쩌구 저쩌구..."라면서 기독교의 창조과학구라에 비유하셨고요.

게다가, "고통이란 것도 정의하기 나름이겠지만 살아있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자신의 신체가 훼손될 때 이런저런 반응을 보이기 마련이며 이 반응을 유발하는 신호를 고통의 표현이라고 정의한다면 식물도 고통을 느낄 것이고 단순히 소리지르고 발버둥치는 것을 고통의 표현이라고 정의한다면 식물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다.", "그 헛소리를 전도하기 위해서 불쌍한 과학을 강간한다면 그냥 놓아두지는 않는 편입니다", "불쌍한 과학은 건들지 마. 종교에다가 과학을 끌어들이지 말란 말이다."라고 까지 하셨었는데 이제와서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로 발뺌을 하시려나 봅니다. 관심 없으신데 왜 이리 장문의 글을 쓰셨나요.

그리고 그렇게 관심 없으시면 멈추시면 되는데 왜 그러시나 모르겠군요. 요 밑에 병원 가보라는 글에서 기불님 마지막 반응에 제가 더 토를 달던가요? 그냥 포기했는데 왜 또 이러시는지. 분이 안풀리나 보죠?

 Commented by Literaly at 2008/09/04 19:45 
생명이 생명을 잡아먹는게 당연한데 왜 그걸 애석해해야합니까?

 Commented by 헤르시온 at 2008/09/04 21:06
극단적인 채식주의자는 감자나 고구마는 먹어도 양파나 당근 같은 식물의 '전체'는 먹지 않는다던가요. 이런 사람을 보면 존경스럽긴 합니다만, 이사람은 '고통'이 아니라 '생명' 이던거 같은데요.
언제부터 채식주의가 생명에서 고통으로 쪼그라 들었지?

 Commented by 로무 at 2008/09/04 21:40
잘보면 저 분께서 지키고 싶으신 건 채식주의가 아니라 "식물은 고통을 못느낀다"라는 전제인 것 같아요.

 Commented by Lancer at 2008/09/04 22:50 
jeajvyfa // 차라리 그냥 욕지거리를 막 하세요.... 님을 보고있자니 감정의 변화가 (답답->짜증->안타까움) 이렇게 전개되네요...

아 그리고, 정말 채식주의자세요? 채식을 하면 두뇌건강에 문제가 생기는것 같아서 안좋아 보여요..

 Commented by capcold at 2008/09/04 23:49
!@#... 앞서 맨땅에헤딩님 리플 보다가... 그냥 뭐 이런 걸 하나 만드시면 어떨까요:
"표창장. 이름:_______ 일자:_______ 위 어린이는 모기불통신에서 과학적/논리적이라 스스로 굳게 믿는 주장을 다량 동원하여 주인장을 짜증나게 만드는 것에 성공하여 개별 포스팅을 유도하였으므로, 이에 표창장을 수여함. 옛다 관심 1그램. 서명: 모기불. 참 잘했어요"

 Commented by jeajvyfa at 2008/09/05 02:59 
헤요... 지겨운 팬덤들. 이런 경우 참 애매해요. 특히 이렇게 팬덤의 달콤함에 취한 주인이 있는 곳이라면 더욱. 쥔장하고는 포기한 상태인데 팬덤이 들끓으면 대응할 공간이 마땅치 않으니. 이 덧글에 대해서 만큼은 기불님께 남의집에 와서 민폐끼쳐 죄송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겠군요.

capcold님//쥔장집에 들어왔으니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는 점은 인정합니다만, 스스로 과학적이지 않은 걸 과학적이라 단정하여 지나가는 사람을 짜증나게 한 사람에 대한 표창장도 필요하겠습니다. 유명했던 어느 황빠를 보는 느낌이 확 나길래 말이죠. 뭐 기불님이 쓸어담을 능력인지 의지인지가 없는것 같으니 저도 이만 물러날 겁니다.

Lancer님//짜증나는 일이죠. 난 내가 채식주의자라는 말은 단 한번도 한 적 없는데 말이죠.

로무님//잘 보셨네요. 기불님이 채식은 종교라는 명제를 강화하기 위해 비과학적 명제를 창조한 것이 볼 성 사나워서요. 기불님 표현을 빌리자면 과학이 강간당하는데 참을 수가 있어야 말이죠.

헤르시온님//저 위에 지나가는이라는 분이 잘 설명했습니다. 채식주의자들에게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죠. '생명'자체에 집중하는 사람들과 '생명의 고통'에 집중하는 사람들, 아예 다 빼고 자기 건강 때문에 하는 사람들 등등.

Literaly님//생명이 느끼는 '고통'에 주목해서 3R 원칙을 세워놓은 과학자들 보고 삽질한다고 말씀하시는 셈이네요.

류지나님//식물을 생명이 아니라고 주장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요. '생명'을 죽이는 것 자체가 싫은 사람들은 익어서 떨어진 과일만 먹는다죠. 지금까지 '고통'에 주목하는 사례만을 다루고 있었습니다. 제가 안한 말에 대해서는 딴데 가서 대응하시길.


(아래는 특히 강추하는 캡콜드님 덧글. 역시 내공이 있으셔서 쟁점을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 나심. 이번일에 교주님 말씀을 철썩같이 믿지만 않으셨다면...)

 Commented by capcold at 2008/09/05 06:57
!@#... jeajvyfa님/ 에에, 저는 "쥔장집에 들어왔으니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는 점" 같은 것은 전혀 주장하지 않습니다만. 까야할 것 같으면 당연히 어디서든 까야죠. 하지만 제가 읽은 모기불님의 논지는 "채식주의자들이 동물은 고통 느끼고 식물은 안느끼니까 식물을 먹자고 하는데, 과학적으로 따지자면 고통을 정의하기에 따라서 식물도 느낀다 할 수 있는 만큼 그들의 주장은 말이 안됨. 그런데 애초부터 식물이 고통을 느끼고 말고 자체가 중요한게 아니야. 먹고 사는게 중요하지." 이렇게 무척 간단명료하게 정리될 수 있는데, 오히려 반박하시는 분의 논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Commented by 적안 at 2008/09/05 08:51
쥔장 열받게 한 것으로 표창장 주자는 말씀 하시길래 말이죠.

그건 그렇고... 캡콜드님, 정리 잘해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처음 시작은 "과학적으로 따지자면 고통을 정의하기에 따라서 식물도 느낀다 할 수 있는 만큼 그들의 주장은 말이 안됨" 여기서 '과학적으로 따지자면'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게 자체가 틀렸으니 '말이 안됨'이라는 결론이 전혀 타당하지 않다는 겁니다. 그 뒤에 이것 저것 딸려 나오고요. 과학이 저렇게 두리뭉실하게 여기 저기 같다 붙일 수 있는 정의를 가지고 있다고 보십니까? 예를 들어 모기불님이 "자신의 신체가 훼손될 때 이런저런 반응을 보이기 마련이며 이 반응을 유발하는 신호를 고통의 표현"이라며 고통의 정의 하나를 예시로 들었는데 이런 정의를 가져 와서 썰을 푸는 것 자체가 틀렸다는 거죠. 과학에서는 그렇게 정의하지 않거든요. 어느 생명이건 위험물질에 대한 회피 본응은 가지고 있습니다만 이것 하나가 고통을 느낀다고 말할 수 있는 충분조건이 되질 않습니다. 이게 이해하기 그렇게 어렵나요?

그리고요, 진지하게 주고 받고 싶으신 마음이 있으시면 http://jeajvyfa.egloos.com/2002160 여기로 와주십시오. 저에 대한 다른 분들의 반응에 대응하러 여기서 더이상 민폐 끼치고 싶지 않군요.


저는 사실 채식주의자입니다.(http://mogibul.egloos.com/3892188)


 Commented by jeajvyfa at 2008/09/05 03:11 
하하~ 많이 웃겼습니다. 이건 뭐... '고통의 제거 혹은 최소화를 고려한다'를 전제로 깔았을 때 주목하게 되는 것은 죽을때의 고통 혹은 고통의 강도겠죠. "죽은 동물을 먹으면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면서 고기를 즐길 수 있죠"라니... 남의 논리를 비꼬는데에도 논리가 필요합니다. 어설프면 비웃음만 사는데.

 Commented by sonnet at 2008/09/05 04:28
"내 손을 더럽히지 않으면" 내지는 "내 눈과 귀 앞에서 돼지 멱따는 소리가 안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란 건데 인간의 의사결정 기준으로는 충분히 실용적인 관점이 아닌가 합니다. 그 광경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굳이 소시지 만드는 과정을 들여다볼 필요는 없죠.

 Commented by jeajvyfa at 2008/09/05 05:56 
sonnet님//인정합니다. 실용적이죠. 그리고 그게 현대에 와서 가능해진건 기술의 발전과 자본주의라는 대량생산 체제 덕분이고요. 조선시대에는 그 기준을 적용해도 서민이거나 자신이 직접 멱따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육식의 즐거움을 충분히 누리지 못했겠죠.

여기에 대해 '고통'에 주목하는 채식주의자들이 기준을 바꾸자고 주장하는 것이겠죠. 생명체가 (내 손을 더럽히건 다른 사람 손에 의해서건 간에)식량화 되는 단계에서 고통을 느끼는지, 느낀다면 얼마나 느끼는지를 평가해서 기준을 만들자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텐데, 전 이 주장이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기에 합리적이라고 평가하는 것이고요. 여기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실험실에서 합성한 단백질로 유사고기를 만들어서 육류를 대체하자는 주장(기불님도 한번 씹으셨을걸요)을 하는 사람들(페타던가?)이 있는데... 단백질을 대체할 비육류를 섭취하면 되는 걸 가지고 이렇게까지 주장하는건 채식주의자 주제에 육류에 대한 집착을 끊지 못했다고 고백하는 꼴이라서 좀 민망할텐데 말이죠.

다른 예로, '생명' 자체에 주목해서 떨어진 과일을 자연스레 수명이 다하여 '죽은' 과일로 보고 이것만 먹는 극단적 채식주의자들이 있습니다. 여기 답글 다시는 분들 중 일부는 이게 더 합리적이라고 평가하시나 본데... 이거야 말로 모순의 극치입니다. 이 극단적 채식주의자들은 고통을 느끼건 말건 생명이면 모두 죽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하지만 이건 불가능하죠. 낙과만 줏어 먹는다 해도 눈에만 안보일 뿐이지 거기에는 살아있는 생명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토마토 소스 한캔에는 평균적으로 구더기 여러 마리 정도에 해당하는 곤충의 사체가 섞여 있다고 합니다. 결국 아무리 주의해도 생명을 완전히 해하지 않는 행위는 불가능하기에 이런 Fruitarianism이야 말로 비합리적,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생명'을 취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인정하되 '고통'을 없애거나 최소화 한다거나, 혹은 고통을 겪지 않는 생명체를 섭취하는 방법을 고안하는게 채식주의자 입장에서 가장 합리적이겠죠.

아마 많은 분들이 기불님이 '채식은 윤리적인 결단인가?'라는 글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여기에 '과학적 판단'을 내리려는 시도 자체가 과학을 강간하는 행위라는 주장에 동의하시는 것 같은데... 전혀 아닙니다. 뭘 모르시는 말씀이죠. 윤리적 기준을 정하는데에 과학적 판단이 근간이 되는 경우는 허다합니다. '낙태'가 대표적인 예죠. '동물 학대'도 그렇겠군요. '수정란'이 인간인가 아닌가에 대한 윤리적 기준을 법제화 하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으로 과학에게 의견을 묻습니다. '동물 학대'에 대한 윤리적 기준을 법제화 하기 위해서도 어디까지가 동물 학대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고통'을 느끼는지의 여부를 과학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제가 어딘가에 링크해 놓은 캐나다 의회의 자료가 그 예입니다. 물론 채식주의자들이 제시한 기준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소원해 보입니다. 윤리적 기준이라는게 과학에 입각해서 엄격하게 정의되는게 쉽지 않거든요. 자기 밥그릇이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에요.

기불님이 자존심에 집착하지 않으셨다면 좀 더 재밌는 토론이 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Commented by 기불이 at 2008/09/05 06:38
정말 말을 못알아듣네. 동물을 먹는다는 것은 종교가 아니라 세상의 윤리의 경우 윤리적 기준이 필요없는 일이에요. 당신이 진작 이비인후과에 가서 귀를 청소했다면 서로 시간낭비를 안했겠지.

 Commented by 이쁜왕자 at 2008/09/05 09:26
저는 결코 채식주의자가 될 수가 없군요.

살아서 파닥거리는 빙어를 그대로 고추장 찍어서, 제대로 씹지도 않고 꼴딱 삼치는 아주 비윤리적이고 파렴치한 짓을 수십 수백번이나 저질러 버렸네요. 이 빙어에게도 뇌가 있어, 고통을 느낄텐데, 이런 고통을 빙어에게 준 것이군요. 저는 대량 빙어 학살자나 다를 바 없는 사람인가 봅니다.

오늘은 은어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산낙지나 구워 먹어야 겠습니다. 낙지의 고통을 최소화해주기 위해서 약불로 살살 구워야 겠네요..

 Commented by 헤르시온 at 2008/09/05 09:34
윤리적 기준을 과학에 둔다는 님의 말에 그저 할말 잃고 감탄했습니다.
오오 교황성하께서 낙태하지 말라고 하는게 중요한게 아니었군요 오오

 Commented by 헤르시온 at 2008/09/05 09:41
그리고 jeajvyfa 님에게 희소식을 드리자면... 현대 도축작업에서는 동물에게 과도한 스트레스를 주면 고기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최대한 스트레스를 덜 주는 방식으로 도축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쁜소식을 드리자면... 한국이나 기타등등 '지구에서는' 곤충들의 고통을 신경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벼를 키우면서 곤충들을 죽이기 위해 농약을 뿌린다던지 여름이 되면 방제작업을 한다던지... 그로 인해 수백만 제곱 킬로미터가 '킬링필드'가 되는 것입니다.
뭐, 사실 이런말 하기 이전에 세스코라는 회사가 광고도 때리면서 열심히 운영되는걸 보면 고통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자연에 주는 악 같군요.

 
 Commented by jeajvyfa at 2008/09/05 10:44 
이쁜왕자님//네 아주 제대로 이해하셨습니다. 윤리적 기준을 그렇게 바꾸자는게 그 주장이죠. 그 윤리적 기준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개인들의 선택이죠. 대개의 사람들에게서 받아들여지게 되어 법제화 까지 된다면 다른 얘기지만요. 제가 여기서 그 주장의 과학적 타당성을 논했지만 사실 저도 그 기준 안 받아드렸습니다. 인간이란 그런거죠. 자신이 철저하게 윤리적 인간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이 몇명이나 있겠습니까.

헤르시온님//교황성하가 종교적 입장에서 낙태에 대해 어처구니 없는 윤리적 기준 만들면 무얼가지고 반박하실건가요? 종교논리로요? 과학이 윤리적 기준을 정하는데에 기여한다는 것이 황당하시다는 것을 보니 과학을 아주 우습게 보시는 분 같아서 어처구니가 없군요. 과학이 핸드폰만 만드는 줄 아시나 봅니다. 최근에 미국에서 꽤 논란이었던 사례를 하나 소개시켜 드리죠. 독극물 주사는 고통을 주지 않기에 윤리적인 처형 방법이라고 알려져 있었는데 최근에 그게 아닌 것 같다는 반론이 나왔죠. 이걸 누가 주장했을까요? 교황성하가? 아니죠. http://en.wikipedia.org/wiki/Lethal_injection#Controversy:_Arguments_against 여기 가서 링크되어 있는 논문들 읽어보세요. 가까운 황박 사태를 돌아보셔도 되죠. 난자 기증이 윤리적인지 아닌지 누가 뭘 가지고 논했는지.


그리고, 더 하고 싶으시면 이리로 오세요. 여기 교주님 댁에서 민폐 끼치는게 죄송해서 말이죠.
http://jeajvyfa.egloos.com/2002160

by 적안 | 2008/09/05 06:04 | 트랙백 | 핑백(2) | 덧글(33)

남성은 잠재적 성 범죄자?

여성부가 "여성의 지나친 노출은 성범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그런 여성들을 보는 남자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라고 말한 것에 대해 며칠동안 논쟁이 있어왔다.
 
나 역시 여기에 껴들었었는데... 다시 쓰기 귀찮다. ㅡ,.ㅡ 궁금하신 분들은 http://adoru0083.egloos.com/3651595 이 글 댓글들을 확인하시길. (한마디로, 성범죄자들이 성욕을 이기지 못해 충동적으로 저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생각하는건 뭘 잘 모르는 소리라는 얘기. 대부분 면식범이며 계획범죄라는 사실을 모르는 듯.)

그건 그렇고... 상당수의 남성들이 여성부, 여성단체들이 남성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취급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성 노출과 성범죄가 무관하다는 여성부의 주장이 그런 오해를 일축시킨다는 점을 인지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듯 하다. 오히려 여성부의 저 주장에 반대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니 그렇다면 그들은 남성들이 잠재적 성범죄자라는 점을 인정한다는 건가?

진심으로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실제로 그렇게 '강력히' 주장하는 남성들이 있다. 저기 지구 반대편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 

그래서 이번 논란을 마무리(?)하는 셈 치고 이를 잘 묘사하는 만화의 한 장면을 소개할까 한다.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에서 성장한 한 여성의 자서전격인 페르세폴리스(PERSEPOLIS)라는 만화다. 동명의 애니메이션이 만들여져서 칸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기도 했었다. 이 만화는 폭압적이고 반민주적인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모습과 이들에 의한 여성 억압의 현실을 사춘기 시절부터 겪어낸 한 여성의 이야기다. 민주화 투쟁을 기억하는 세대, 특히 여성들에게 기시감을 느끼게 해주는 만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궁금하신 분들은 서점 가서 직접 보시고... (한글판으로 1권이 나왔다. 2권 완결)

재밌는 장면을 하나 소개하도록 하겠다. (그림은 인터넷에서 주워왔다)


 
(쇼파에 앉아 있는 세사람 중 왼쪽 머리만 보이는게 주인공. 가운데는 아버지, 오른쪽은 어머니)

참고로, 주인공 어머니가 저런 말을 하는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저 장면 바로 앞을 보면 길을 걷다가 이슬람 근본주의자 남성들로부터 베일을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너 같은건 길에서 강간당해도 싸다면서 해코지를 당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 다음 장면에서는 저런 반여성적인 정책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시위에 근본주의자 남성들이 테러를 가하는 장면이 나온다. 심지어 칼부림까지.


아, 그리고 한가지 더.
여성의 노출이 성범죄를 부추긴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여성은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여 범죄를 저지를지도 모르는 잠재적 성범죄자인 남성들'이 범죄를 저지르도록 타락시키는 원흉이라는 셈인데... 잠재적 성범죄자라는 손가락질이 더 열받을까, 아니면 남성들이 성범죄자가 되도록 만드는 원흉이라는 손가락질이 더 열받을까?

by 적안 | 2007/08/03 02:30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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