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9월 06일
식물은 고통을 느끼는가?
모기불님이 드디어 위키피디아에 가셔서 Pain으로 검색해 보셨나 보다.
'식물은 고통을 느끼는가?(http://mogibul.egloos.com/3893529)'라는 포스트를 올리셨다.
그런데, 과학이 말하는 고통에 대해 딱 일반인 수준의 인식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해 버리셨다. 이거 어쩌나. 뭐 다른 사람들이 이런 견해를 밝혔다면 문제 될게 없겠지. 하지만 이 지식 가지고 그런 막말을, 그것도 엄격한 실증주의 과학자이신 기불님이... 실망이 크다.
과학에서 고통에 대해 뭐라 말하는지 궁금하신 분들은 일단 모기불님의 글을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나서 그 글에 제가 달아 놓은 덧글(아래에 옮겨 왔습니다)을 읽어주십시오. 모기불님의 자뻑성 마지막 반응도 놓지지 마시길. 일을 이렇게 키우시면 어떻게 합니까. 기회가 있을 때 잘 하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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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jeajvyfa at 2008/09/06 13:40
관심 없다고 하셨었는데. 생각이 바뀌셨나 보군요. 이왕이면 위키말고 다른 자료들도 찾아보셨으면 좋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드는데.
"물론 우리가 생각하는 고통은 못느낄 지 모르지만 개미에게도 죽는 게 별로 유쾌할 것 같지는 않다는 것쯤은 생각해볼 수 있다."
->오류가 있군요. 고통을 못 느끼는데 유쾌한지 아닌지 느끼고 자시고 할 게 없겠죠.
"식물이 갖는 "먹히고 싶지 않다" 라는 기분이나 "나를 먹는 넘은 대를 끊어놓겠다." 라는 강력한 결의는 무어라고 정의를 해야 할 것인가?"
->그런 걸 생존 '본능'이라고 하죠. 잘 잡아 먹히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갖고 있어야 종을 보존하는게 가능하겠죠. 정확히는 그것을 가지고 있었기에 종을 보존해온 것이라고 봐야겠지만요. 고통도 못 느끼는 개체가 이런 본능조차도 없으면 지금까지 살아 남았겠습니까. 그 작은 크기에 복잡한 신경구조를 갖추기 보다는 간단하게 생존 본능만을 가지고 있는게 훨씬 효율적이겠죠. 진화의 과정에서 그런 종들이 살아 남았을 테고요.
"개미나 벌은 성대가 없으니까 말은 못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갸들이 서로 의사소통을 못하는 것은 아니란 말이야. 갸들은 화학물질로 의사소통을 하죠. 식물은 성대는 고사하고 입도 없지만 갸들도 화학물질을 통해 서로 의사소통을 합니다."
->척추동물과 다른 의사소통 방법을 가지고 있는 다른 동물들이 고통을 느낄지 판단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과학자들이 생각을 안해 봤을 까요. 이 쟁점과 관련해서 처음 쓴 덧글에 소개해드린 글이 있는데 아직도 안읽어 보셨나 봅니다.
일단, 전문을 읽으시길 바랍니다만, 제기하신 쟁점에 대한 내용들만 옮겨오겠습니다.
http://www.parl.gc.ca/37/2/parlbus/commbus/senate/Com-e/lega-e/witn-e/shelly-e.htm
Scientists have used three lines of reasoning to assess the likelihood that invertebrates are capable of feeling pain5.
The evolutionary function of pain
The neural capacity of invertebrates
The behaviour of invertebrates
1. The evolutionary function of pain.
In vertebrates pain is thought to be an important educational tool6. Vertebrates are relatively long-lived creatures and learning shapes much of their behaviour. Learning from pain (and pleasure) plays a vital role in the development of their behaviour6.
Almost all invertebrates are short-lived and their behaviour is thought to be largely genetically determined7. Therefore, there is less evolutionary pressure selecting for the evolution of pain in this group of animals6.
2. The neural capacity of invertebrates.
Except for the cephalopods, invertebrates have small nervous systems, consisting of many small brains (ganglia). Because of the small number of neurons and the distributed organization of their nervous systems, invertebrates are thought to have limited cognitive capacity6. High cognitive capacity is thought to be a prerequisite for the development of an emotional response6.
3. The behaviour of invertebrates
Invertebrates show few, if any, of the behaviours that we would recognize as evidence of emotion6. Many invertebrates are cannibalistic, and many eat their young when given the chance. Most have no social behaviour. Although they can respond vigorously to noxious stimuli, even this response is inconsistent. Insects, for example, will continue with normal activity even after severe injury. An insect walking with a crushed tarsus (lower leg) will continue applying it to the ground with undiminished force. Locusts will writhe when sprayed with DDT. However, they will also continue feeding while being eaten by a praying mantid6.
다른 과학자들을 너무 우습게 보신 것 같습니다. 인간이 아닌 종들이 고통을 느끼는 능력을 연구할 때 그들이 인간과 다르다는 점을 기불님이 아닌 다른 과학자들은 미쳐 고려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다뇨.
"그런 날이 오기 전까지는 만일 식물은 고통종류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완벽하게 입증된다고 해도 이것이 동물은 고통을 느끼니까 먹으면 안되고 식물은 못느끼니까 먹어도 된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지진 않는다는 것을 잊으면 곤란하다."
->위에서 제가 설명드린 것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식물이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게 일반적인 견해인 만큼, 내가 살기 위해 어쩔수 없이 다른 생명을 취하지만 고통을 최소화 한다는 윤리적 기준을 받아들인다면 확률이 높은 선택을 하는게 타당하겠죠. 대부분의 사람들도 일부 과학자들이 1, 20년 후 인간광우병의 두번째 창궐 가능성을 제시했음에도 확율이 높지 않을 것 같다는 견해를 받아들여서 패닉에 안빠지고 검역시스템 믿으며 쇠고가 잘 먹고 있지 않습니까. 100%가 아니더라도 높은 확률의 선택을 하는게 비합리적이진 않을텐데요.
(광우병 예시에 대해 오해가 있을까봐 덧붙이자면, 개인의 선택과 국가의 정책은 달라야 한다는 것)
Commented by 기불이 at 2008/09/06 13:45
이비인후과를 가보라니까.... 아직도 "고통을 최소화 한다는 윤리적 기준을 받아들인다면" 이런 소리를 하고 있어. 식물이 고통을 느끼든 말든 건전한 식생활을 영위하는 상식인에게는 그딴 윤리적 기준따위 적용이 안되니까 아무 상관이 없다는 이야긴데 그게 그렇게 이해가 안되나?
"고통을 최소화 한다는 윤리적 기준을 받아들인다면" 이딴 엉터리 전제를 깔아놓으니까 그딴 이상한 결론이 나오는 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병원에 가봐요.
Commented by jeajvyfa at 2008/09/06 14:37
하하, 알았어요, 알았어. 끝까지 막말 밖에 안하시네. 과학 얘기 좀 하시길래 좀 제대로 상대해 드릴까 했더니 이건 뭐... 기껏 일반인 수준의 지식 가지고 이렇게 뻐팅기셨다니. 제가 소개해드린 자료는 아예 읽지 마세요. 읽고 나면 쪽팔릴테니까.
그리고, 미국에서 동물 실험에서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 하기 위한 3R 원칙을 법제화 했다던데(http://www.aphis.usda.gov/animal_welfare/downloads/policy/policy12.pdf) 기불님 혹시 의학이나 생물학 계통에 계시다면 신경 좀 쓰셔야 겠어요.(이 계통에 계신게 아니라는게 확실하지만) 건전한 상식인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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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인이 "고통을 최소화 한다는 윤리적 기준을 받아들인다면"?(http://mogibul.egloos.com/3893808)
Commented by 적안 at 2008/09/06 14:57
이제 조금 이해하셨는데요, 한가지가 빠졌네요. '고통을 최소화'라는 말에는 '한 개체가 겪는 고통을 최소화'라는 뜻과 함께 '고통을 겪는 동물의 숫자를 최소화'라는 두가지 의미가 다 포함됩니다.
그나저나, 제가 저 2번의 과학적 근거를 논했지만 저도 저 윤리적 기준 제대로 안 받아들이고 있으니 본인이 비윤리적이라고 너무 괴로워 하실 필요는 없어요. 사람이 이미 익숙해진 것을 포기한다는것도 어렵고 그게 자신에게 식도락의 큰 즐거움을 주던 것이라면 더 어렵다는 것 알거든요. 뭐 브리짓 바르도 같은 인종차별주의자야 인정 안할테지만.
Commented by 기불이 at 2008/09/06 15:20
너 아직도 이비인후과 안갔냐. "이미 익숙해진 것을 포기한다" 는 것은 채식교로 전향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건전한 상식인에게는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란다. 언제까지 그렇게 찌들어 살텐가. 자랑스러운 잡식주의자로서 당당하게 살아보지 않으련?
Commented by 엄머나 at 2008/09/06 16:35
또 나타나셨군요, 적안님. 책은 좀 보고 오셨어요?
공리주의에서 말하는 쾌락의 최대화 공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 쾌락의 총량 - 고통의 총량 = 총 쾌락량 >
이 공식을 통해 나온 총 쾌락량이 (+)인 방향으로 가는 것이 좀 더 사회적으로 올바른 결정이라고 주장했지요.
적안님이 말씀하시는 바가, 이 초기단계의 공리주의와 뭐가 다르지 잘 모르겠네요. 공리주의가 받은 비판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1. 고통과 쾌락에 대한 정의.
2. 고통량과 쾌락량의 계량에 대한 문제.
3. '올바름'에 대한 문제 등등
이런 비판과 이에 관련한 피터지는 논의가 200년 동안 지속되었지만, 아무도 이를 사회, 즉 인간의 사회 바깥으로 확장하려는 무모한 시도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되면 학문으로서의 존재 의의를 상실하게 되거든요. 헛소리가 되니까요. 만일 공리주의를 인간 사회 바깥으로 확장하게 되면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1. 인간이 만든 올바름에 대한 공식이 과연 인간 외의 존재에게 적용 가능한가?
2. 적용 가능하다면, 그들이 그 사실을 인정할 것인가?
3. 위의 1과 2를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등등
심지어는 공리주의를 그 근간으로 삼는 경제학에서도, 이를 엄격하게 통제하기 위해 다양한 제약조건들을 걸어놓고 있습니다. 경제학 개론이라도 졸지않고 착실히 들으셨다면, '인간은 자신의 즐거움을 최우선으로 판단한다, 인간은 모두 합리적인 존재이다, 정보의 비대칭성은 무시한다' 등의 경제학 개론 수준의 제약조건들을 들어보셨을겁니다. 이렇게 가정하지 않으면 논의 자체가 불가능해지니까요. 좀 더 현실에 가까운 고급 경제학에서는 이런 가정들을 조금씩 완화하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하고요. 적안님의 수준에 맞추기 위해 제 전공인 철학 쪽으로는 언급을 줄이지요.
제가 든 저런 문제점들을 모기불님께서도 꾸준히 지적하셨지만, 보이지 않으신다면 그 지점에서 의사 소통은 이미 끝난겁니다. 적안님, 그냥 혼자 주장하셔서 쾌락을 증가시키시고, 여기서는 그만 입 다무셔서 여러 사람의 도통을 줄이시는게 적안님의 철학적 입장에 합치하는 길이에요. 지금이라도 줏대를 가진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Commented by 적안 at 2008/09/06 16:47
엄머나님,
"아무도 이를 사회, 즉 인간의 사회 바깥으로 확장하려는 무모한 시도는 하지 않았습니다. "
->여기에 대해서는 모기불님께 드린 덧글 중 일부를 복사해 오는 것으로 대체하겠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동물 실험에서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 하기 위한 3R 원칙을 법제화 했다던데(http://www.aphis.usda.gov/animal_welfare/downloads/policy/policy12.pdf) 기불님 혹시 의학이나 생물학 계통에 계시다면 신경 좀 쓰셔야 겠어요.(이 계통에 계신게 아니라는게 확실하지만) 건전한 상식인님. ^^
"'인간은 자신의 즐거움을 최우선으로 판단한다"
->네, 맞습니다. 물론 여기서의 '즐거움'의 정의가 그리 협소하지 않죠. 동물의 고통을 직시하는게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그 고통을 느끼지 않으려 하는 것은 '즐거움'의 범주에 속하지 않나보죠?
그리고요, 모기불님은 여기에 대해 진지하게 과학적 토론 할 생각이 없으신 듯 하니 관심 있으시면 제 블로그로 와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쥔장님이 자기 집에서 계속 나가라고 하니 저는 여기에 오래 있을 수가 없는데, 님 같은 분들이 쥔장집에서 제게 반론 하고 계시면 토론을 하자는 건지 상대방이 듣건 말건 내 할말 하겠다는 배설의 의지인 건지 알 수 가 없어서요.
Commented by Cuchulainn at 2008/09/06 16:22
에... 동물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채식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말하자면 골자인 듯 싶은데:
그렇다면 채식을 하려면 직접 밭갈고 추수해서 다른 동물들이 어처구니 없이 죽는 경우를 배제해야 가능한 논리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쉽 게 말하자면, 매일 먹는 밥, 빵같은 물건만 보더라도, 밀밭에 동물이 전혀 살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계신건 아닌가 하는데요. 아시나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밭류의 환경은 토끼나 새같은 주로 먹히는 입장에 놓이는 동물들에게 매우 좋은 피난처 역할을 하곤 하는데, 문제는 추수기가 되겠죠. 이앙기의 칼날은 동물은 살려두고 밀은 베어내고 할 줄 모르거든요. *논에도 미꾸라지등 물고기 많이 살고 있습니다. 역시나 같은 논리가 적용되지요.* 차라리 저렇게 자기도 모르는 상황에 비명에 칼날을 맞고 죽어가는 경우라면 그래도 창졸간에 죽으니 고통이 나름대로 적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만, 브라질이나 기타 3세계 국가에서 자주 써먹는 농작기법중 하나가 화전인건 잘 아실테죠? 무수히 많은 동물들이 보금자릴 잃고 운이 좋으면 다른 곳에 보금자릴 틀던가, 그렇지 못하면 심심하면 죽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데, 저런 고통은 그래도 도살장에 끌려가서 겪는 고통은 아니니 괜찮은 고통이라고 보시는건 아닐테고...
따라서, 동물의 고통이나 생명이 문제가 된다면 1)자동화된 추수기계의 사용은 철저히 배제시키는 상황을 연출해야 할테고... 2) 야채의 출신지역을 트랙 걸어서 동물들의 생명이 희생되지 않았음을 보증할 수 있어야 할텐데... 그렇지 않을 양이면 가게에서 파는 쌀이나, 빵집에서 파는 빵, 샐러드 가게에서 파는 양상추 이런거도 드시지 마셔야 올바른 논리의 적용이 되지 않나요? 쌀에도, 밀에도, 기타 온갖 야채에도 비슷한 논리가 적용이 되는 상황이거든요. 그렇다면 결론은 스스로 김매고 밭갈고 모 심어서 먹을걸 마련해야 하지 않느냐는 결론이 나오지요.
(괜히 입맛에 맞는 쪽으로만 동물의 고통 운운하고 끼워넣으면 곤란하죠. 동물의 고통을 적용할거면 모든 동물에게 다 적용하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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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지도 않은 윤리적 기준같은 소린 집어치우세요. 채식이 최소화하는 숫자는 고통을 겪는 [가축]의 숫자이지 [동물]의 숫자는 아니랍니다.
Commented by 적안 at 2008/09/06 16:42
아뇨, 골자를 잘못 파악하셨습니다. 지금 논점은 동물 중 척추 동물과 일부 무척추 동물이 고통을 느끼고 그외의 동물 및 식물을 고통을 느끼지 않으니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 하는 식습관을 고안하여 지향하는 채식주의에 대한 얘기 입니다. 고통을 완전히 없애자는게 아니죠. 그건 불가능합니다. 이 그룹은 그걸 알고 있는 집단입니다. 그러기에 제시하신 1), 2)는 고통을 '최소화'한다고 주장하는 집단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논리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적극적인 실천적 채식주의자들 중에는 제시하신 것들과 같은 것들을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경우도 있고요. 실제로 2)의 예는 일부 현실화 된 것들이 있기도 합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유기농 상점인 whole food 같은 곳에는 가끔 친환경적인(구체적으로는 경작지 주변 생태계 파괴를 최소화 하는 경작 방법을 적용한) 농산물이 나오기도 하죠. 한국에서는 오리를 이용한 무농약 농법이 여전히 오리의 희생(나중에 잡아서 오리고기로 출하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죠)을 담보로 하기에 친환경적이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된 적이 있었고요.
"채식이 최소화하는 숫자는 고통을 겪는 [가축]의 숫자이지 [동물]의 숫자는 아니랍니다." 가축은 동물이 아니었던가요?
그리고요, 모기불님은 여기에 대해 진지하게 과학적 토론 할 생각이 없으신 듯 하니 관심 있으시면 제 블로그로 와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쥔장님이 자기 집에서 계속 나가라고 하니 저는 여기에 오래 있을 수가 없는데, 님 같은 분들이 쥔장집에서 제게 반론 하고 계시면 토론을 하자는 건지 상대방이 듣건 말건 내 할말 하겠다는 배설의 의지인 건지 알 수 가 없어서요.
Commented by 기불이 at 2008/09/06 23:26
적안// 야 너는 지금 니가 싼 똥을 넘들이 치우는 것을 '토론' 이라고 부르냐?
Commented by 남쪽계단 at 2008/09/06 19:09
[The Omnivore's Dilemma]에서 대략 다 나온 이야기들로 기억합니다만... 같은 과학적 사실에서도 얼마든지 다른 윤리적 판단이 가능하지요. 공리주의가 윤리적 판단의 근거라면 동물을 잘 보살피고 인도적으로 도살하는 식으로 동물의 '쾌락'의 양을 늘이고 '고통'을 줄이는 방법도 있거든요. 저자의 결론도 대략 그런 식이었고. 책은 바로 보실 수 없지만, 저 책의 근간이된 뉴욕타임즈 글은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An Animal's Place http://query.nytimes.com/gst/fullpage.html?res=9500EFD7153EF933A25752C1A9649C8B63&scp=1&sq=An%20Animal%27s%20Place&st=cse
Commented by jeajvyfa at 2008/09/07 06:41
네, 당연히 윤리적 판단은 다를 수 있습니다. 님이 제시하신 예는 animal welfare에 해당합니다. 반면 지금 논하고 있는 채식주의자들은 animal right을 주장하는 것이고요. 그리고 현재 동물의 well-being에 대해 많이 주목하고 있는 서구국가에서조차도 animal right보다는 animal welfare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겠죠(저 역시 머리로는 animal right이지만 animal welfare를 현실적 선택으로 삼고 있습니다).
물론 생명의 고통을 최소화 하자고 주장하는 채식주의자들 중에서도 animal welfare까지만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현재 과학적으로 보기에 고통을 느끼긴 하지만 고통의 지속시간이 가장 짧다고 여겨지는 어류까지는 먹는 채식주의자들이 있죠. 물론 채식주의자들 내에서도 이들이 채식주의자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별로 격렬하지 않은)논쟁이 있는 것 같고요. 포유동물의 고기인 red-meat만을 먹지 않는 사람들도 넓은 범위의 채식주의에 포함되곤 하는데 이들은 '인간이 느끼는 고통과 가장 유사한 수준의 고통을 느낀다고 여겨지는 포유동물'을 섭취하지 않는 것을 선택한 사람들이죠. 가장 낮은 수준의 채식주의로 평가 받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미드 Grey's anatomy에 등장하는 남자 의사가 아마 이런 사람이었죠. 꼭 드라마 속에서만 등장하는 정도는 아니고, 미국 사람들 중에 이런 친구들이 꽤 있더군요. 제가 속한 연구실의 한 미국인 한테서 미국에서 광우병 터진 이후에 겸사겸사해서 이쪽으로 돌아섰다고는 이야기도 들어봤거든요.
과학계도 마찬가집니다. animal right까지는 동의하지 않지만 animal welfare에 동의하기에 실험동물의 고통을 줄여주는 3R 원칙을 채택하였고 몇몇 서구 국가에서는 법제화가 이루어 지기도 했습니다. 생명의 고통을 최소화 한다는 대전제에는 동의하고 있다는 뜻이죠. 또한
"Humane science is ethically appropriate and has the added advantage that it can result in the generation of more robust and reliable scientific information."(http://caat.jhsph.edu/publications/articles/To_3R_Is_Human_J-A_20041.pdf)
라며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 하려는 노력이 '인간의 이익과 행복을 늘리는 데 기여한다' 라는 유용성(공리성)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해당 과학계의 연구원들에게 설문조사를 하면 이 원칙의 도입에 대해 80~90% 정도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이런 사실들이 기불님이 막말을 동원해서 계속 주장하고 있는 '(모든 채식은 종교니까)이 채식주의도 종교다', '종교의 근거로 과학을 끌어들이면 과학을 강간하는 것이다', '식물이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 주장은 비과학적이다', '기껏해야 모른다고 말하는게 가장 과학적으로 타당하다', '상식인에게는 그딴 윤리적 기준따위 적용이 안된다', '이를 계속 주장하는 찌질이 jeajvyfa은 병원에나 가봐라'따위의 명제를 강화해주지는 않습니다. 대학 1학년 생물학 강의만 들어도 고통이 진화의 산물이며 왜 척추동물들이 고통을 느끼는 능력을 갖는 방향으로 진화했는가, 왜 그것이 종의 생명을 연장하는데에 유리했는가 정도의 지식을 갖출 수 있고, 이 분야에 대한 과학계의 동향을 모르더라도 이 프레임을 다른 종에 대해 적용했을 때 기불님의 주장이 얼마나 비과학적인지 알 수 있거든요.
Commented by nox at 2008/09/07 09:51
뇌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 괜히 지나가다가 낚였는데, pain 주제만큼 아직 알려진게 없는 분야를 저렇게 어떠한 행동을 할만큼 확실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게 놀랍네요.
척추동물의 Pain pathway 야 대강 알려진게 맞지만 그 너머의 생물체에게서는 아직 알려진게 거의 없다는게 올바른 표현입니다. (참고로 적안님이 언급하신 "Do Invertebrates Feel Pain?" 아티클은 그냥 "이렇지 않을까?" 수준의 아티클입니다.)
그리고 Pain 의 가장 큰 특징중의 하나는 주관적이라는 것입니다. 밖에서 보면 그저 pain sensory 에서 발생한 신호가 nociceptor 들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신호에 그렇게 강렬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가 경험해 봤기 때문이지요.
거기에다가 뭔가 굉장히 pain 에 가치부여를 하시는데 pain system 은 사실 걍 진화를 통해 얻어진 생존 도구입니다. 자신에게 위해가 될만한 것을 미리 피하거나 닥쳤을 때 피하기 위한 도구 인 것이지요. 이 시스템이 쓸만해서 계속 물려받고 있는 것이고요. (선천적 혹은 후천적으로 pain 을 못느끼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을 마감하는지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동물에 한정지어서 우리끼리는 고통을 느끼니까 어쩌고 저꺼고는.
지나치게 인간 중심적, 동물 중심적인 카르텔 같이 보이네요.
Commented by jeajvyfa at 2008/09/07 12:25
님, 지금은 이야기가 채식주의가 말하는 윤리적 기준에 중심이 맞춰져 있다 보니 제가 강하게 단언을 하는 듯이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혹시나 싶어서 다시 살펴봤는데 정확히 과학적 판단만을 필요로 하는 논점들에 대해 기불님 막말에 기분이 상해서 다소 감정적으로 덧글을 달았을 때 빼고는 그렇게 단언했다고 보이질 않는군요.
모기불님 글 중에 제가 이와 관련하여 제일 처음 의견을 달은 게 있습니다. http://mogibul.egloos.com/3884108 일단 여기 가셔셔 제 첫 덧글부터 다시 한번 읽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가 제기 하지 않았던 쟁점들을 가지고 막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nox님은 보여주신 태도로 보아 불합리한 비난을 하지 않기 위해 그 정도 수고는 해주실 분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찾아다니기 귀찮으시면 그냥 제가 정리해 놓은 걸 보셔도 됩니다.(http://jeajvyfa.egloos.com/2002160)
솔직히 뇌과학과는 거리가 멀다보니 자신은 없습니다만, 뇌과학은 기작에 집중하는 분야다 보니 확실하다고 말하기 어렵다라는 것을 일반적인 견해라고 보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진화생물학을 대입해보면 얘기가 많이 다릅니다. 사실 이에 대해서는 모기불님이 그럭저럭 제대로 설명하셨죠.(고통을 느끼는 능력과 생존본능을 혼동하셨지만)
"식물이 동물, 특히 포유동물만큼 민감하게 고통을 느낀다면 아마 살아가기가 무척 어려울 것이다. 식물은 발이 없어서 지면에 고착해서 살아가기 때문에 온갖 잡넘들이 다 찾아와서 귀찮게 하는데 고통에 민감하고 게다가 감정까지 있다면 그 생이 얼마나 고통스럽겠냔 말이지. 지나가는 넘들은 아무 생각없이 마구 밟고 다니지, 게다가 온갖 벌레들이 다 와서 기어댕기고 뜯어먹는데 얼마나 간지럽고 아프고 그러겠습니까.(http://mogibul.egloos.com/3893529)"
식물로 진화된 생명이 중추(혹은 그와 유사한 무엇)가 끝없이 고통이 발생한다는 신호를 보내며 회피행위를 명령하는 시스템을 갖춰야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런 시스템이 필요한 것은 식물보다 더 오랜 생을 살면서도 기껏해야 평생 수십의 후손을 남길 뿐이어서 위험을 높은 확률로 피하는 능력이 필요한 척추 동물(+무척추동물 일부) 정도에서나 필요하겠죠. 또한 그런 시스템을 갖출 수 있을 정도의 용기와 그 시스템을 안전히 내부에 갖추고 있을 수 있을 정도의 강도를 갖는 조직이 필요할 것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하고요.(이를 간접적으로 뒷받침하는 과학적 근거들은 님도 언급하신 그 아티클에서 소개하고 있고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단언할 수 없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어떤 과학자도 여기에 대해 strong statement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겠죠. 무척추 동물에 대해서도 이에 관한 논문(예를 들어 http://www.springerlink.com/content/k424313511661146/)이 적을 수 밖에 없는 것도 당연한 것이고요. 대신 http://www.newscientist.com/article/mg13418184.800 -> 이정도로 정리하는 것은 가능한 정도겠죠. 그래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견해'라고 말해왔습니다.
그렇다면 아무리 그래도 확언하기 어려운 것을 가지고 어떤 행위, 윤리적 기준을 만들 필요까지야 없겠냐는 질문이 당연히 따라올 수 밖에 없겠죠. 고통을 완전히 배제한다는 기준이라면 이 질문에 답하는게 어렵겠지만 '고통을 최소화'한다는 기준이라면 가장 높은 확률의 것을 선택하는 것이 비합리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고통을 느낄 확률이 높아보이는 것을 먹자는 주장이라면 쓸데없는 모험이겠죠. 하지만, 일단 생명을 먹을 수 밖에 없다는 전제하에, 이왕 먹을거면 고통을 느낄 확률이 낮아보이는 것을 먹자는게 부도수표라고 생각하시나요? 모기불님이 이에 대해 비슷한 반론을 하셨고 제가 답한 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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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이 오기 전까지는 만일 식물은 고통종류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완벽하게 입증된다고 해도 이것이 동물은 고통을 느끼니까 먹으면 안되고 식물은 못느끼니까 먹어도 된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지진 않는다는 것을 잊으면 곤란하다.(http://mogibul.egloos.com/3893529)"
->위에서 제가 설명드린 것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식물이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게 일반적인 견해인 만큼, 내가 살기 위해 어쩔수 없이 다른 생명을 취하지만 고통을 최소화 한다는 윤리적 기준을 받아들인다면 확률이 높은 선택을 하는게 타당하겠죠. 대부분의 사람들도 일부 과학자들이 1, 20년 후 인간광우병의 두번째 창궐 가능성을 제시했음에도 확율이 높지 않을 것 같다는 견해를 받아들여서 패닉에 안빠지고 검역시스템 믿으며 쇠고가 잘 먹고 있지 않습니까. 100%가 아니더라도 높은 확률의 선택을 하는게 비합리적이진 않을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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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다가 뭔가 굉장히 pain 에 가치부여를 하시는데 pain system 은 사실 걍 진화를 통해 얻어진 생존 도구입니다. 자신에게 위해가 될만한 것을 미리 피하거나 닥쳤을 때 피하기 위한 도구 인 것이지요. 이 시스템이 쓸만해서 계속 물려받고 있는 것이고요."
->이에 대해서는 이미 저도 다른 덧글에서 같은 내용의 의견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윤리적 기준을 만든다면 좀 다르죠. 말씀하셨다시피 우리가 경험해봤기에 여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고 우리가 경험하는 정도의 고통을 느낀다고 여겨지는 생명체를 기준으로 삼자는 것이고요.
그리고, "지나치게 인간 중심적, 동물 중심적인 카르텔 같이 보이네요."에 대해서는 (지겹지만)저는 또다시 서구 국가에서 이미 실험현장에 3R 원칙을 법제화 한 사례를 들어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Commented by nox at 2008/09/07 23:50
jeajvyfa 님의 말씀이 잘 이해가 안가는게
1. 인간 <-> (인간 외) 척추동물 과의 상호 관계에 있어 (인간 외) 척추동물에게 인간과 비슷한 pain 기작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right 를 최소한 지켜주자라는 의견은 이미 상당부분 받아들여졌고 3R 원칙과 같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동의하고요.
2. 하지만 인간, (인간 외) 척추동물, 그 외의 생명체 이렇게 셋의 관계에 있어 그 외의 생명체는 척추동물과 달리 (척추동물이 가지고 있는) pain pathway 가 없기 때문에 먹는것은 윤리적이다. 라는 문제는 1번 문제와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인간, (인간 외) 척추동물 비슷한 pain system 을 가지고 있지만 그 외의 생명체는 아직 잘 모른다 상황입니다. (정확하게는 있는지/없는지 가 아니라 어떠한 형태인지 모르겠다 입니다.) 따라서 셋을 동일한 잣대로 어떠한 행동 (이 문제에서는 먹는다 겠지요) 을 할 수 있다 없다 혹은 어느정도까지 된다라는 판단을 내리는 것은 "과학적인 잣대로는" 불가능하다 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2번 문제는 과학적으로 어떠한 fact 가 있어서 된다/안된다 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 좀 어렵습니다. 그래서 어떠한 가치를 가지는 사람이냐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올 수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종교적" 이다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Commented by jeajvyfa at 2008/09/08 05:41
이곳에서 1번에 동의하는 현직 과학자를 만난 것만도 무척 감격스럽군요. 윤리적 기준을 정하는데에 과학이 역할을 한다는 것 자체가 헛소리라고 하는 분들이 계셔서 말이죠.
2. 말씀하신 것 중에 애매하게 들리는게 있군요. "정확하게는 있는지/없는지 가 아니라 어떠한 형태인지 모르겠다 입니다" ->있는지 없는지는 확실한데 형태가 뭔지 모른다는 말씀이신지요. 어떠한 형태인지 모른다가 중요한 상황이라면 님은 있는 것은 확실하다고 보신다는 뜻이 되는 것 아닙니까. 있지도 않은 것의 형태를 탐구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과학에서 이에 대해 실증적으로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외의 생명체들에도 외부의 위험을 회피하는 시스템은 대부분 갖춰져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시스템에서 고통을 느끼게 하는 기작이라고 할 만한 것이 발견된 적도 없습니다. 또한 진화생물학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이 그런 기작을 갖는게 오히려 그들에게 불리하다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고통'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계신게 아닌가 싶습니다.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고통이라는 기작을 우연히 습득한 척추동물과 일부 무척추 동물이 종을 유지할 수 있게 된 이유를 생각해 보십시오. 고통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생각해보시면 됩니다. 고통을 느끼는 기작은 위험 요소에 대해 무척 과민한 반응을 만들어 내고 학습이 가능한 정도의 고도로 발달된 시스템을 갖춘 개체로 하여금 향후 그 위험 요소에 대해 높은 확률로 '물리적인 접촉을 미리 회피'하게 하도록 학습하게 만듭니다. 높은 확률로 위험 회피를 가능케 하는 시스템입니다. 즉, 학습기능이 없는 개체가 고통을 느끼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은 무척 불리합니다. 고통은 오히려 회피 움직임을 방해합니다. 이렇게 학습능력을 고려하면 무척추 동물들도 고통을 느낄 것 같지만 위의 인용문장이 보여주듯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님도 읽어보신 그 아티클의 한 문장을 인용해 보죠.
"Insects, for example, will continue with normal activity even after severe injury. An insect walking with a crushed tarsus (lower leg) will continue applying it to the ground with undiminished force."
고통을 느끼는 개체가 뭉게진 다리에 힘을 빼지 않고 땅을 디딜것이라고 여겨지십니까. 왜 아무런 도움도 안되는 그런 기작을 진화의 과정에서 얻겠습니까.(정확히는 그런 종이 왜 진화의 과정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물리적 접촉을 미리 회피할 수 있게 된 데에 '고통'의 기작이 관여하지 않는 것이죠.
인간은 고속도로에 뛰어들지 않습니다. 학습능력이 부족한 동물들은 인간 보다 훨씬 자주 뛰어듭니다만, 그들 역시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물체가 위험하다는 학습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식물들은 기회만 있으면 갈라진 아스팔트 사이에서 싹을 피웁니다. 고통의 기작을 갖춰서 회피를 하는 대신 자동차 바퀴에 의한 지속적인 충격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조직을 갖고 생존합니다. 역겁의 시간이 흐른 후 식물들이 고속도로에 싹을 피우지 않게 될지도 모르죠. 이것이 진화의 과정에서 우연히 습득한 '아스팔트 에서는 싹을 틔우지 않게 하는 유전자' 덕분이 아니라 학습덕택이라면 우린 가이아 이론 비슷한 것을 받아들여야 하겠죠.
그리고, 거듭 말씀드리지만 다른 분들이 막말로 공격을 위해 "과학이 어떻게 윤리를 결정하냐?"고 제 주장을 왜곡하시죠. 전혀 틀렸다고 볼 수는 없지만 남들이 제 주장을 오해하게 만들기 무척 쉬운 문장이죠. 다른 곳에서도 밝힌적이 있지만 제가 제 블로그에 이곳의 덧글들을 옮기면서 올린 포스트의 제목도 "윤리적 결단은 과학에게 자문을 구하는가?"입니다. 생명의 고통을 최소화 해야 한다는 윤리적 판단이 과학적 근거를 갖는지에 대해 과학에게 질문을 했을 때 과학은 고통을 느낄 확률이 가장 낮은 것은 식물이다라는 정도의 자문을 해주는게 가능합니다. 백보 양보해서 제가 '과학이 그런 윤리적 기준을 만들어낸다(혹은 현실에서 과학이 윤리에 선행한다)'는 의미로 오해할 만한 표현을 썼다고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그런 오해로 인해 논점이 흐려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Commented by kafkaesk at 2008/09/07 23:54
아니 화제의 저 분은 진화생물학 운운하시는데 일반생물학도 안배우신 분이에요, 보니까. 전 동물 실험도 하지만 primary cell culture (human, mouse 모두)도 하는데 저 분이 그 과정을 보면 생명체를 어떻게 정의할지 궁금해져요. 스트레스를 줬을 때 세포가 죽기 싫어서 NF-kB 활성화되는걸 보고 우실지도 몰라요.
Commented by 기불이 at 2008/09/08 01:33
그건 고통이 아니라 생존본능이야 라고 하겠죠.
Commented by jeajvyfa at 2008/09/08 05:49
기불님이 제대로 답해주셨네요.
덧붙이자면 님이 보이시는 반응은 인간의 학습 능력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통을 느낄 때 하는 반응과 유사한 반응을 보이는 개체를 보고 오해를 하는 것이죠. 생명에 대한 과학적 정의가 아직 명확하지는 않지만 '생명=고통을 느끼는 존재'라고 정의하지는 않죠. 여러번 말씀드리지만 '죽기 싫어 하는 행동(종 보존을 위한 본능)'이 고통을 느낀다를 입증하는 충분조건이 아닙니다. 실험만 하지 마시고 공부 좀 하세요.
Commented by kafkaesk at 2008/09/08 08:04
공부가 직업이고, 코스웍은 진작에 끝났어요. 저기, 생리학책 한글로 나온 좋은 책 많으니까 가볍게 사서 읽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jeajvyfa at 2008/09/08 10:26
지금 그게 반론인가요? 세포가 죽기 싫어서 NF-kB 활성화되는 과정에 고통을 느끼는 기작이 관여한다고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설명해 주세요.
Commented by nox at 2008/09/08 12:10
한가지 jeajvyfa 님께 궁금한 것이 있는데 혹시 전공분야가 과학쪽이 아니신지요? 제가 언급한 2 번 기술을 완전히 다르게 이해하고 계시네요. 게다가 지금 답변하시는 것들 중 생물학 (진화생물학을 포함해) 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설명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제가 읽어봤다고 하시는 그 아티클은 제가 이미 언급했지만 "그다지 인용할 만한 아티클은 아니다" 였습니다.
제가 지적했던 부분
- 척추 동물을 넘어서는 도메인에서의 잣대로 척추 동물 만 가지고 있는 nociceptor 기반의 pain system 을 가지고 윤리 결정을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어불성설입니다. (그래서 제가 카르텔이라고 지칭했던 것이고요)
- 또한 위의 문제와 별개로 고통의 유무가 대상 생물을 먹어도 되느냐 마느냐의 지표가 되느냐는 전혀 다른 가치 문제입니다.
그리고 척추 동물에 제가 계속 한정하고 있긴 하지만 사실 nociceptor 기반의 pain system 은 바다에 사는 민달팽이랑 초파리도 가지고 있습니다. 민달팽이는 고통의 long-term memory 연구에 많이 사용되었고요. 차라리 인간과의 유전적 친화도를 가지고 식용 여부를 따지는게 속편하지 않을까요? : )
Commented by jeajvyfa at 2008/09/08 15:09
첫번째 질문은 짜증나는 질문이군요. 슬쩍슬쩍 잘 찌르십니다. ^^
"사실 nociceptor 기반의 pain system 은 바다에 사는 민달팽이랑 초파리도 가지고 있습니다."->이거야 말로 저한테 말씀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여기 저기서 인용한 자료들 중 어딘가에 이미 비슷한 내용들이 있었습니다. 제 부탁을 안 들으셨군요.
그 아티클은 위에 소개해드린 84년도 논문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인정합니다. 별로 그 수준 이상의 논문은 없습니다. 그래서 바로 뒤이어 과학잡지의 기사 하나를 링크해드리면서 기껏해야 그 수준으로 정리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했고요.
"nociceptor 기반의 pain system 을 가지고 윤리 결정"->윤리를 결정하는게 아니라 고통을 느끼는 능력의 유무를 추측한다고 쓰셔야 합니다. 위에서 그렇게 오해하지 말라고 부탁드렸습니다만. 님도 결국 남들과 별로 다르지 않으신 겁니까.
거듭 설명드리는데... 진화의 과정을 봤을 때 nociceptor 혹은 그와 비슷한 어떤 것이 관여하는 방식으로든간에 고통을 느끼는 능력을 식물이 습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식물은 그들에게 맞는 가장 효율적인 기능을 갖춘체로 진화해 왔을 것이고 식물의 생태를 보건데 고통을 느끼는 능력은 오히려 방해된다는 설명입니다만... 솔직히 지겹습니다. 위에서 영화에나 등장하는 가이아 이론을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죠.
조금 다른 설명을 해보자면, 동물의 경우 신경계에서 신호가 전달될 때 다른 조직에 영향을 끼치지 않고 한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전달된다고 하죠. 피부를 바늘로 찌르면 뇌로 전달되서 그 부위가 아프다고 느낄 테고요. 다른부위들도 아프다고 느끼진 않죠. 반면 식물의 경우 한 곳에서 발생한 신호가 그 식물의 거의 모든 세포에게 광범위하게 전달됩니다. 반면 발생된 신호가 아주 짧은 시간동안만 지속되는 만큼 반응 역시 무척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나고요. 그래서 다행히 빠른 시간안에 반응을 끝낸 뒤 다시 항상성을 유지시킬 수 있죠. 만약 이 과정에 고통이 끼어든다면 무척 불리한 시스템일 겁니다.
그리고,
"위의 문제와 별개로 고통의 유무가 대상 생물을 먹어도 되느냐 마느냐의 지표가 되느냐는 전혀 다른 가치 문제입니다."
"척추동물에게 인간과 비슷한 pain 기작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right 를 최소한 지켜주자라는 의견은 이미 상당부분 받아들여졌고 3R 원칙과 같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동의하고요. "
이 두 문장은 모순되는 군요.
참, 제 덧글들을 살펴보지 않으신 것 같아서 말씀드리는데, 식물도 고통을 느끼는 것 같다는 근거로 자주 인용되는 벡스터 효과라는게 있습니다. 한번 찾아보시길.
Commented by nox at 2008/09/08 15:57
"위의 문제와 별개로 고통의 유무가 대상 생물을 먹어도 되느냐 마느냐의 지표가 되느냐는 전혀 다른 가치 문제입니다."
"척추동물에게 인간과 비슷한 pain 기작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right 를 최소한 지켜주자라는 의견은 이미 상당부분 받아들여졌고 3R 원칙과 같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동의하고요. "
이 두 문장은 모순되는 군요.
빙고! 왜 jeajvyfa 님이 문제에서 겉돌고 있는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님께서 다른 모든 사람과 논쟁을 하고 있는 지점은 이 지점인듯 싶네요.
Commented by jeajvyfa at 2008/09/08 16:32
nox님이야 말로 이 논쟁이 겉돌게 하고 싶은 욕망이 넘치시나 봅니다. 하던 얘기나 계속 하시죠. 벌써 바닥인가요?^^
Commented by nox at 2008/09/08 22:46
사형을 집행함에 있어 사형수의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을 위해 최소한의 고통으로 죽는 방법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형수가 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해당 사형수에게 사형을 집행 하는 것을 철폐하거나 사형제도 자체를 (고통이 원인이 되어) 재고하지는 않지요.
모기불님 죄송합니다. 냉정하게 살펴보니 떡밥을 계속 던진 것 같습니다. 거듭 죄송합니다.
그리고 전전두엽의 특정 시냅스가 hard pairing 혹은 imparing 되어 있는 환자는 이비인후과가 아니라 신경외과에 문의하셔야 합니다.
Commented by 기불이 at 2008/09/08 22:59
nox// 아니 저는 설마 뇌가 문제이겠는가.... 그냥 귓구멍이 막힌 거겠지, 이런 생각으로 이비인후과를 권해봤죠...
Commented by nox at 2008/09/09 00:43
벡스터 효과는 *의사과학* 입니다.
Commented by jeajvyfa at 2008/09/09 03:51
nox님, 밑천 바닥나서 도망치는 꼬라지 치고는 말이 많네요.
"하지만 사형수가 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해당 사형수에게 사형을 집행 하는 것을 철폐하거나 사형제도 자체를 (고통이 원인이 되어) 재고하지는 않지요."
이쪽으로 논점 바꾸고 도망가려는 걸 보니 앞에껀 확실히 밑천이 바닥난 거고... 난척을 하지 말던가. 어설픈 비교는 약점 잡히기 쉽기 때문에 함부로 쓰지 않는게 좋거든요. 사형수야 죽어도 싸다고 법적 판결이(난 동의 안하지만) 났다는 전제니까 죽이는 것 이외의 대안은 없으니 어떻게 안락사 시킬꺼냐는 논쟁만 남죠. 우리나라야 목매달아 죽이지만 서구에서는 고통을 주면서 죽이는 건 기본권 침해라고 보거든요.(얼마전에 주사제를 이용한 사형방법이 사실은 고통을 없애지 못한다는 논문이 나와서 사형제도 바꿔야 한다는 논쟁이 미국에서 있었듯이 말이죠.) 이것도 모순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반면 먹는 문제는 대안이 있으니까 비교할게 안되거든요.
그리고 거듭 말하지만 어째 이 교도들은 남 말을 지 멋대로 듣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걸도 인지부조화인가. 제가 말했죠. 나도 현실적으로지 지지하는건 animal welfare까지라고. 단 현실적으로 animal right이 대중적 동의를 얻기는 어렵겠지만 나름의 논리와 근거는 가지고 있으니 윤리적 기준이 될 가능성은 있는 것이라고.(아예 비논리적이라 하겠지만, 한 30년 전까지만 해도 님이 동의한다는 3R 원칙도 비슷한 취급을 받았을 겁니다. 철학, 사회학적 논의와는 별도로 과학계에서는 동물의 고통을 느끼는 능력에 대한 뚜렷한 증거가 없어 증명이 안된다는 이유로 동물의 행동은 오로지 본능 때문만이라고 주장하며 신이 만든 인간의 우월성을 고집하는 기독교계 과학자(?)들 때문에 동물이 고통을 느낀다는 것을 전제로 한 윤리는 설 틈이 없었거든요) 자꾸 엉뚱한 소리를 하시는 걸 보니 제가 부탁한 것 안들으셨군요. 남하고 논쟁할 때는 남이 뭐라 하는지 일단 제대로 파악이나하고 시작하세요. 안그러면 본인이 아무리 막말을 하면서 방어를 하든 망신만 당합니다.
벡스터 효과가 유사과학인 걸 저한테 확인해달라 하실 필요는 없어요. 내가 뭐라하는지 좀 읽고 오라는 부탁을 무시했기 때문에 그러나 본데 이미 한번 나왔거든요. 이걸 꺼낸건, 꼴을 보아하니 님이 혹시 그걸 마지막 지푸라기로 잡을 것 같아서 말이죠.
혹시라도 아직 일말의 진지함이 남아있다면 제 블로그로 오세요. 얼마든지 상대해 드릴테니까. 단지 배설에 대한 욕망만 남아있다면 여기서 계속 푸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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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기불님의 글 [식물은 고통을 느끼는가?(http://mogibul.egloos.com/3893529)]와
[상식인이 "고통을 최소화 한다는 윤리적 기준을 받아들인다면"?(http://mogibul.egloos.com/3893808)]에 트랙백으로 걸어놨습니다.
나비의일견식님의 [채식주의에 있어서 왜 항상 '식물의 고통'이 문제되는 걸까?(http://psycheview.egloos.com/2044243)]에도 보냈습니다.
덧. 혹시나 해서 밝히지만 여기에 기불님 글, 덧글 및 의견을 제시한 이들의 글들과 제 반응들을 다시 퍼오는 것은 계속 반론을 제기하고픈 사람들에게 두 블로그를 오가며 오고간 내용을 확인할 수고를 덜어주기 위함입니다. 또한 토론 공간을 이쪽으로 옮겨와, 남을 비난할 목적으로 비과학적 썰을 풀은 뒤 반론을 접하자 거듭 토론 거부 의사 표현을 하신 모기불통신 블로그 쥔장을 배려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덧글을 다실 분들은 제발 부탁이지만 대충이라도 훑어 보시고 남이 안한 얘기 가지고 트집 잡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 by | 2008/09/06 14:46 | 트랙백 | 덧글(6)




